#약사가 아닌 A씨는 약사 면허를 빌려 약국을 차렸다. 경찰 수사 끝에 약사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송치됐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요양급여비용도 환수 대상이 됐다. 그러자 A씨는 소유 부동산을 자녀 명의로 넘겼다. 환수를 피하려는 시도였다.
공단은 환수 결정 과정에서 재산 이전 정황을 포착했다. 즉시 해당 부동산에 대해 처분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사해행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법적 압박이 이어지자 A씨는 결국 환수금 3억원을 전액 납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 운영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뒤 재산을 숨겨온 고액·상습 체납자들로부터 지난해 모두 191억원을 징수했다고 23일 밝혔다. 2009년 이후 누적 징수율은 2024년 말 8.3%에서 지난해 말 8.8%로 올라갔다.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은 의료인 면허를 빌리거나 명의를 위장해 불법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곳들이다. 적발 이후에는 재산을 빼돌리거나 제3자 명의로 이전해 징수를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장전입과 차명 이전 등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고 공단은 설명했다.

공단은 이에 대응해 '불법개설기관 특별징수추진단(TF)'을 상시 운영하며 징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장 수색과 압류, 민사소송을 병행하고, 기존 방식으로는 손대기 어려웠던 채권까지 압류 대상에 포함했다.

장기간 추적 끝에 체납자를 붙잡은 사례도 있다. 약사가 아닌 B씨는 면허를 빌려 약국을 운영하며 약 70억원의 체납을 남겼다. 체납 처분 이후 7년간 공단의 연락을 차단하고 거주지를 숨긴 채 강제징수를 피해 왔다.

공단은 B씨의 소득과 생활 패턴을 분석한 끝에 고급 차량을 몰고 특정 사업장을 드나드는 정황을 확인했다. 잠복과 탐문 끝에 실제 거주지를 찾아내 수색에 나섰고, 현금과 고가의 가전제품을 압류했다. 이후 압박 끝에 B씨는 1억원을 일시 납부하고 분할 납부를 약속했다.

또 다른 체납자 C씨는 불법 의료기관을 운영해 약 3억원을 체납한 뒤 생계 곤란을 이유로 최소 금액만 납부해 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배우자 명의 사업장을 통해 매년 약 2억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호화 생활을 이어온 사실이 드러났다.

공단은 배우자 명의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실제 운영자를 확인하고, 실거주지를 특정해 수색을 벌였다. 현장에서 현금과 외화, 골드바와 귀금속을 압류했고, C씨는 추가로 5000만원을 납부한 뒤 잔액 전액을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한 지사 앞을 시민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공단은 휴면예금, 법원 공탁금, 민영보험사의 자동차보험 진료비 청구권, 폐업 의료기관의 의료기기 등도 압류 대상에 포함시키며 징수 범위를 넓혔다. 이를 통해 약 10억원 규모의 추가 회수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법원 공탁금을 활용한 징수도 있었다. 의료기관 개설 자격이 없는 D씨는 면허를 빌려 의원을 운영하다 약 1억4000만원을 체납했다. 민사소송 과정에서 가압류를 풀기 위해 8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했지만, 이후 이를 찾아가지 않았다. 공단은 공탁금을 압류해 전액을 회수했다.

불법 요양병원을 운영하다 66억원을 체납한 E씨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직후 13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지인 명의로 넘겼다. 공단은 부동산 이전 사실을 확인하고 처분금지 가처분과 사해행위취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법원은 "유죄 판결을 예상하고 악의적으로 재산을 처분했다"고 판단했다. E씨는 12억원을 일시에 납부했다.

공단은 앞으로 고액·상습 체납자를 상대로 인적사항 공개, 신용정보 제공, 현장 징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방침이다. 출국금지와 수입 물품 압류를 가능하게 하는 법·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공단 관계자는 "숨긴 재산은 끝까지 찾아내 징수하겠다"며 "은닉 재산에 대한 국민 제보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은닉 재산 신고 포상금은 지난해 말 최고 30억원으로 상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