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에너지 생산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주사전자현미경 사진. 암세포가 면역 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훔쳐 면역 반응을 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CNRI

전쟁이 나면 방공망 같은 군사 시설과 함께 발전소가 가장 먼저 공격을 받는다. 인체에서 벌어지는 전쟁도 마찬가지다. 암세포는 인체 방어군인 면역 세포에서 에너지 기관인 미토콘드리아를 탈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병리학과의 데릭 오콴-두오두(Derick Okwan-Duodu) 교수 연구진은 "암세포가 미토콘드리아를 빼앗아 면역 세포의 공격을 회피하고 면역 세포들이 집결한 림프절로 전이할 수 있다"고 지난 12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셀 메타볼리즘'에 발표했다.

◇발전소 훔쳐 인체 면역 반응 회피

면역 체계는 암세포의 성장과 확산을 막는 인체의 방어군이다. 하지만 종양이 인체에 정착하면 이 방어군의 공격을 피해 림프절로 전이된다. 말하자면 적군이 방어군 사령부에 떡하니 자리 잡는 셈이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을 통해 미토콘드리아가 암세포의 비밀 무기임을 밝혀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질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소기관으로, 세포핵과 달리 별도의 DNA도 갖고 있다. 과학자들은 미토콘드리아가 원래 독립적인 세균이었다가 동물 세포에 들어와 공생하면서 에너지 기관으로 진화했다고 본다. 식물 세포의 에너지 기관인 엽록체도 마찬가지다.

연구진은 생쥐에 이식된 암세포가 다양한 면역 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를 빼앗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토콘드리아 전이는 암세포가 림프절에 이식됐든 피부에 이식됐든 관계없이 동일한 비율로 발생했다. 암세포는 무조건 적군의 배터리 또는 발전소부터 탈취하는 셈이다.

암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빼앗아 최소 두 가지 이점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소를 뺏기면 세포 독성 T세포나 자연살해(NK) 세포 같은 면역 세포가 적군을 식별하고 공격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반대로 암세포가 면역 세포를 피하는 위장력은 강화됐다. 인체는 침입자를 막다가 정상 세포까지 다치지 않도록 면역 관문이라는 단백질로 표시를 한다. 미토콘드리아를 탈취한 암세포는 면역 관문인 PD-L1로 자신을 위장했다.

암세포는 MHC1(주조직적합성복합체 1형) 단백질도 활용했다. 원래 MHC1은 면역 세포에 암세포의 특징을 알려줘 공격을 유도하는 정보병 역할을 한다. 미토콘드리아를 빼앗은 암세포는 MHC-I 발현을 조절해 면역 세포의 공격을 피했다.

암세포가 여러 면역 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를 탈취하면 PD-L1과 MHC1을 통한 면역 회피력은 높아지고(왼쪽 녹색 화살표), 반대로 면역 세포의 공격력은 떨어진다(오른쪽 붉은색)./Cell Metabolism

◇에너지보다 면역 체계 교란이 목적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 탈취는 에너지를 얻기보다 통신망을 교란하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토콘드리아를 흡수한 암세포는 면역 신호를 전달하는 제1형 인터페론 경로와 연관된 유전자 발현을 시작했다.

인터페론 신호는 암세포가 면역 세포를 피하고 림프절 침범을 지원하는 데 도움을 줬다. 방어군의 통신을 도청하고 역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연구진은 인터페론 유전자를 억제하면 암세포의 림프절 이동 능력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암세포는 미토콘드리아의 원래 기능과는 상관이 없었다. 암세포가 빼앗은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 운반 분자인 ATP(아데노신 삼인산)를 생산하지 못해도 암세포의 면역 회피 능력은 그대로 유지됐다. 연구진은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산이 암세포의 림프절 공략에 결정적인 요인이 아님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유타대 생화학과의 미나 로-존슨(Minna Roh-Johnson) 교수는 "기존 연구는 대부분 탈취된 미토콘드리아의 역할이 암세포에 에너지만 공급하는 것으로 가정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흥미롭다"고 말했다. 로-존슨 교수는 2023년 국제 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전이된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 대사 기능을 상실해도 여전히 암세포 성장을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암세포가 미토콘드리아를 빼앗고 해당 조직으로 전이되는 일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 사우스 앨라배마대와 텍사스대 의대 공동 연구진은 지난해 네이처에 신경세포의 미토콘드리아가 암의 뇌 전이를 돕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암세포의 미토콘드리아 탈취를 공략해 암 전이를 막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신시아 라인하트-킹(Cynthia Reinhart-King) 라이스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이번 발견은 미토콘드리아 이식이 암 진행을 돕는 새로운 메커니즘임을 보여준다"며 "여러 연구실에서 면역 세포를 바꿔 미토콘드리아 탈취를 통한 암세포의 면역 회피에 대응하도록 하는 '면역공학(immunoengineering)'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현재 다양한 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를 구분하는 특징을 규명하고, 암세포 내부에서 미토콘드리아의 활동을 추적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암세포의 전이 경로를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오콴-두오두 교수는 "암세포가 빼앗은 미토콘드리아가 암의 생존과 증식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Cell Metabolism(2026), DOI: https://doi.org/10.1016/j.cmet.2025.12.014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9176-8

eLife(2023), DOI: https://doi.org/10.7554/eLife.85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