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제기한 의사 수요 추계 왜곡 주장에 대해 항목별 반박 자료를 공개했다. 정부가 추계위 결과를 근거로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자, 의료계가 "수요를 부풀린 숫자"라며 반발하자 직접 해명에 나선 것이다.
추계위는 13일 설명 자료를 통해 "이번 추계는 현재 확보 가능한 자료와 합의 가능한 가정을 토대로 도출한 최선의 결과"라며 "특정 정책 결론을 전제로 수치를 산출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의협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의정 갈등이 겹친 2020~2024년 의료 이용 데이터를 포함해 수요가 과도하게 추정됐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추계위는 해당 기간을 임의로 제외하지 않고 전수 활용했다고 밝혔다. 특정 시기의 데이터를 제거할 경우 최근 의료 이용 변화가 과도하게 소거돼 오히려 의료 수요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의료 이용량 예측에 활용한 ARIMA(자기회귀누적이동평균) 모형에 대한 비판에도 반박했다. 의협은 ARIMA가 과거 증가 추세를 기계적으로 미래로 연장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지만, 추계위는 "최근 관측치의 정보는 직접 반영되고, 과거 정보의 영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는 구조"라며 "특정 시기의 급증 패턴을 그대로 고정해 늘리는 방식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ARIMA는 보건의료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시계열 예측 기법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분석 기간을 2000년까지 확대한 점도 논란이 됐다. 의협은 2000년대 초반 의료 환경이 현재와 다르다며 최근 자료만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추계위는 시계열 분석에서는 예측 기간이 표본 길이에 비해 지나치게 길어질 경우 불확실성이 급격히 커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자료만 사용할 경우 코로나19와 같은 특수 상황이 장기 추세를 왜곡할 위험이 크다는 판단이다.
의사 업무량을 진료비 자료로 추정한 방식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의협은 고가 검사·장비 비용이 포함된 진료비로는 의사 업무량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다고 지적해왔다. 이에 대해 추계위는 전일제 환산(FTE) 방식이 이상적이라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전국 단위로 일관되게 산출할 공식 통계나 행정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제한된 자료로 FTE를 적용할 경우 오히려 추계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어, 현 시점에서 비교 가능성과 객관성이 가장 높은 진료비를 대리지표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AI 도입에 따른 의사 생산성 향상 효과를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과대 반영이 더 비현실적"이라고 반박했다. 추계위는 AI로 절감된 시간이 곧바로 동일한 수준의 진료량 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보고, 생산성 향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함께 고려한 복합 시나리오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환자 상담과 설명, 다학제 협의 등 의사의 판단과 소통이 필수적인 영역은 대체가 어렵다는 이유다.
일부 수요 추계안에만 시나리오를 적용한 점을 두고 선택적 적용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추계위는 조성법은 기준연도 의료 이용 수준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정태적 모형으로, 구조상 추가 시나리오 적용이 방법론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ARIMA와 같은 시계열 모형은 과거 추세와 변동 구조를 바탕으로 미래값이 생성되는 동태적 모형이어서 시나리오를 분리해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추계위는 이번 수급 추계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구성된 전문가 위원회가 12차례 회의를 거쳐 도출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회의록과 자료는 모두 공개돼 있으며, 추계 방법론 고도화와 데이터 구축은 향후 5년 주기의 정기 추계 과정에서 지속 추진할 과제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김태현 추계위원장은 "중장기 의사 수급 추계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며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현재 도출 가능한 최선의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