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보건복지부 산하기관 업무보고가 열렸다./뉴스1

"의료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리스크는 민사 배상이 아니라 형사 책임입니다."

박은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장은 12일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업무보고에서 한국 의료사고 처리 구조의 핵심 문제로 '형사 절차의 과도한 개입'을 지목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결과와 무관하게 형사 고소부터 이뤄지는 관행이 필수의료 붕괴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원장은 "지난해 의료사고와 관련해 형사 절차가 개시된 건수가 약 800건에 달하지만, 실제 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되는 사례는 20~30건 수준"이라며 "대부분 무죄나 불기소로 끝나지만, 의료인에게는 그 과정 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년간 이어지는 수사와 재판, 반복되는 소환과 감정 절차가 의료인을 현장에서 떠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봤다. 박 원장은 "형사 고소가 손해배상 협상의 수단처럼 활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 구조에서는 누가 필수의료 현장에 남으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원장은 한국의 의료사고 형사화 구조가 국제적으로도 예외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의료사고를 주로 민사 보상이나 행정 책임의 영역에서 다루고, 형사 처벌은 고의나 중과실이 명확한 경우로 제한한다"며 "우리처럼 의료과실 전반이 형사 절차로 연결되는 나라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중재원 내부에서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박 원장은 다만 "형사 책임을 없애자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라며 "국가가 보험을 통해 민사적 손해배상을 책임지고, 환자가 배상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전제"라고 선을 그었다.

대안으로는 대만의 사례를 언급했다. 대만은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기관이 사고 원인과 대응 과정, 재발 방지 대책을 환자에게 설명하도록 의무화했다. 박 원장은 "처벌보다 설명과 조정, 보상에 초점을 맞춘 구조"라며 "의료기관이 책임 있게 설명하는 제도는 환자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박 원장은 의료인 형사 책임 완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인정했다. 환자단체와 시민사회가 환자 권리 약화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형사 책임 면제가 목표가 아니라, 실효성 없는 절차를 줄이고 환자 보호를 실질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