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중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이 지난해 10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의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뉴스1

"수술은 안 되고, 주사는 된다."

한국 의료 수가 체계의 왜곡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가 12일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업무보고에서 공개됐다. 강중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은 이날 2024년 기준 건강보험 진료비 116조원 가운데 전체 수술 진료과의 수술료가 3조2000억원에 그친 반면, 신경차단술에는 2조9000억원이 쓰였다고 밝혔다. 고난도 수술보다 비교적 간단한 시술에 더 많은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는 의미다.

강 원장은 "신경외과 뇌수술, 흉부외과 심장수술, 뇌·복부 수술, 이비인후과 두경부 수술 등 필수 고난도 수술 분야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며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서 필수과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평원은 이런 왜곡을 청구 데이터 분석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강 원장은 "청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섹터별 수가 흐름과 진료 양상을 개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정상 범주를 벗어난 검사나 시술이 얼마나 반복되는지도 함께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CT 검사가 거론됐다. 그는 "CT는 촬영 기준은 있지만 '얼마나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상한은 없다"며 "1년에 CT를 130번 찍는 경우도 실제로 발생한다. 환자를 위한 진료라 하더라도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과잉 촬영 논란이 컸던 MRI가 기준 정비 이후 촬영 건수가 줄어든 것처럼, CT 역시 관리 기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심평원은 행위별 수가의 근간이 되는 상대가치 체계 자체에도 손을 대겠다는 방침이다. 강 원장은 "상대가치는 처음 설계될 때 진료비용 자료 구축 과정에서 허점이 있었다"며 "진료비용 자료를 보다 객관적으로 검증·표준화하고, 상대가치가 상시 조정될 수 있도록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 비교 결과도 왜곡을 뒷받침한다. 강 원장은 "미국과는 상대가치 구조가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일본과 비교하면 수술 수가는 2배에서 4배까지 격차가 난다"며 "고난도 수술은 입원 환자가 많고, 야간·주말 응급과 법적 리스크까지 감당해야 하지만 보상은 턱없이 낮다"고 말했다. 그는 "외과를 40년 했지만, 이런 환경에서는 젊은 의사들이 수술을 기피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과잉 이용 문제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강 원장은 "신경차단술을 1년에 670번 받거나, 물리치료를 369회 이상 받는 사례도 있다"며 "경증 치료비만 따져도 연간 약 18조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심평원은 의료 과다 이용 방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관련 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다만 현행 시스템의 한계도 분명하다고 했다. 강 원장은 "현재는 당일에 다른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실시간으로 알기 어렵다"며 "하루에 여러 병원을 돌며 물리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검사와 시술의 과잉을 줄이고 의료 이용을 합리화하는 것이 재정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