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2027학년도 이후 의대 정원 논의에 착수했다. 정부는 의사 인력 수급 추계 결과를 존중하되, 지역 필수·공공의료 강화와 교육 여건 등 정책적 판단을 함께 고려해 인력 양성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보정심은 6일 오후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2차 회의를 열고,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의 중장기 수급 추계 결과를 공식 보고받았다. 이날 회의에서는 김태현 수급추계위원회 위원장과 신정우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장이 참석해 추계 산출 과정과 주요 결과를 설명했다.
위원장을 맡은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중장기 의사 인력 수급 추계는 법률적으로 미래 의료 이용 행태와 기술 발전, 근로 형태 변화 등을 완전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위원회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시점에서 관측 가능한 최신 자료와 전문가 간 합의 가능한 가정을 토대로,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추계 결과를 도출했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에서 나오는 '비과학적 졸속 행정'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앞서 "정부가 입시 일정에 쫓겨 설익은 결론을 내는 것은 또다시 '2000명 의대 증원 사태'와 같은 국가적 과오를 반복하는 길"이라며 "철저한 과학적 검증과 교육 여건의 현실적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이날 수급추계위원회와 보정심의 역할 구분도 분명히 했다. 그는 "데이터와 방법론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수급추계위원회와, 수요자·공급자 대표가 참여해 정책적 판단을 하는 보정심의 논의는 상호 보완적이지만 역할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의사 인력 규모를 둘러싼 정책 판단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의사 인력 규모는 지역 필수·공공의료 서비스 제공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단순히 수치를 적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 고려와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했다.
의대 정원 심의 기준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복지부는 의과대학의 교육 여건과 교육의 질을 감안할 필요가 있고, 대학과 학생들의 예측 가능성, 수급추계 주기를 함께 고려해 정원을 제시하자는 기준까지 총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1차 회의에서 추계 결과를 존중한다는 전제 아래 정책 판단 기준을 정리했다"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 보장을 위해 지역 필수·공공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이에 필요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구 구조 변화와 보건의료 기술 발전, 근무 환경 등 의사 인력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보건의료 정책 변화 역시 중요한 판단 요소"라고 거듭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1월 한 달 동안 매주 보정심 회의를 열어 의대 증원 규모를 논의하고, 설 연휴 이전에 결론을 낸다는 계획이다. 보정심이 2027학년도 의대 정원 규모를 결정하면, 교육부는 이를 전국 40개 의대에 배분한다. 이후 각 대학은 학칙 개정과 전형 변경 등 후속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늦어도 2월 중순 이전에는 정원 규모가 확정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앞서 수급추계위원회는 국민 의료 이용량 등을 바탕으로 2040년 기준 5704명에서 최대 1만1136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소 추계치를 적용하더라도 향후 10년간 매년 약 570명씩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에 따라 의대 증원 규모가 500~1000명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보정심 결정 이후 '의정 갈등 재점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24·25학번 의과대학생 대표자 단체'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증원 논쟁에 앞서 이미 악화된 의대생 교육 환경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현재 다수의 의과대학에서 24학번과 25학번이 동시에 교육을 받고 있다"며 "그 결과 강의실과 실습실 부족, 교수 인력 과부하, 임상 실습 기회 축소 등 교육의 질을 저해하는 문제가 이미 발생하고 있거나 발생이 예상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