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의료비 부담을 덜기 위한 사회 안전망인 건강보험 제도는 1977년 도입됐다. 이후 적용 대상을 단계적으로 넓혀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를 완성했다. 병실료를 시작으로 MRI·초음파 검사까지 보장 범위도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보장성 강화와 함께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급여 기준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탈모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 검토를 지시하면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건강보험 제도를 둘러싼 주요 쟁점과 보장성 강화의 득과 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간암으로 투병 중이던 60대 이 모씨는 2년 전 병세가 악화해 경상도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지만, 병원측의 권유로 각종 영상 검사를 받았다. 사흘 뒤 그는 숨졌다. 유가족은 "당시 환자는 영상 촬영 과정에서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들어 고통을 호소하는 상태였다"며 "임종을 앞둔 시점에 정말 필요한 검사였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재정 압박이 현실화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로 재정 부담이 불가피한데 당장의 씀씀이부터 크게 늘려왔기 때문이라는 게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25년 8월 발간한 사회보험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보험 적립금 소진 시점은 2028년으로, 당초 전망(2030년)보다 2년 앞당겨졌다. 예산정책처는 "2024~2028년 20조원 규모의 의료개혁 투자와 2025년까지 월 2000억원이 투입되는 비상진료체계를 반영한 결과"라며 "고령화와 보장성 확대로 건강보험 지출 증가는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케어' 이후 MRI 13배…"저렴하니 찍어보자"
전문가들은 재정 악화의 핵심 원인으로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불린 보장성 강화 정책을 지목한다. 2018년부터 시행된 이 정책은 CT·MRI·초음파 등 영상검사와 2~3인실 병실을 건강보험 급여로 대거 편입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 결과 환자가 체감하는 의료비 부담은 크게 낮아졌다. 뇌·뇌혈관 MRI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 전에는 50만~70만원을 부담해야 했지만, 급여화 이후 본인 부담금은 18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의료 이용은 급증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의학적 필요성이 크지 않은 경우에도 "어차피 싸니 찍어보자"는 식의 검사 관행이 확산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뇌·뇌혈관 MRI 급여가 확대된 이듬해인 2019년, 두통·어지럼증으로 시행된 MRI 촬영 건수는 60만9449건으로 2017년(4만3928건)의 13배에 달했다. 이 중 45%는 단순 두통·어지럼증 환자로, 임상적으로 MRI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였다.
외국인 환자의 영상검사 급증도 문제로 지적됐다. 202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문재인 케어 이후 외국인의 영상검사 증가 폭이 내국인을 크게 웃돌았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정부도 뒤늦게 제동을 걸었다. 2020년 4월부터 암이나 '벼락 두통' 등 7가지 의학적 위험 신호가 있는 경우에만 MRI 급여를 인정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고가 영상검사의 급격한 급여화로 일부 불필요한 검사가 남용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보장성 강화에 투입된 건강보험 재정은 26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MRI 급여화에만 2018~2022년 1조4272억원이 쓰였다.
최선형 대한영상의학과의사회장은 "MRI·초음파 급여 확대 이후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는 비율인 '병 인지율'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성과"라면서도 "어디까지가 필요한 검사인지에 대한 기준과 이용 관리 없이 급여 범위가 빠르게 넓어진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환자 부담을 낮추는 데에 정책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된 만큼의 효과성을 확보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령층에서 이런 과잉 진료 문제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 회장은 "노인 환자의 경우 어떤 검사를 해도 본인 부담이 수천원 수준이다 보니 '한 번 더 찍어보자'는 선택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급여 확대가 검사 빈도를 구조적으로 늘린 요인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CT·MRI·초음파 年 5조원… "사망 한 달 전 검사도 급증"
급여권에 편입된 검사 항목은 지출을 줄이기 어렵다. 조선비즈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CT·MRI·초음파 등 주요 영상검사의 연간 급여 청구액은 2017년 2조원대에서 2024년 5조2486억원으로 2.6배 늘었다.
초음파 검사 환자 수는 7년 새 176만명에서 1123만명으로 급증했고, MRI와 CT도 환자 수와 청구액이 모두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24년 초음파·MRI 검사 청구액은 2017년 대비 각각 364%, 196% 증가한 2조3315억원, 1조7690억원이었다.
특히 80세 이상 고령층에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80세 이상 CT 촬영 환자 수는 2017년 39만명에서 2024년 77만명으로 늘었다. 2024년 80세 이상 MRI 촬영 환자 수는 28만명으로, 2017년보다 17만명 더 늘었다. 초음파 촬영 환자 수는 2017년 7만명에서 작년 56만명으로 늘어, 49만명 증가했다.
임종기 환자의 영상검사 이용도 늘었다. 건보공단이 2023년 노인 장기요양보험 수급자 사망자 16만9943명의 사망 전 1년간 급여 이용 내역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사망 전 한 달 동안 CT를 촬영한 비율은 31.7%(5만3823명)로, 2014년(14.6%)의 두 배 이상이었다.
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 노인이나 치매, 뇌혈관질환 등 특정 질환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환자에게 방문 요양, 시설 입소 등 장기요양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회보험 제도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건강보험료에 포함돼 회사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하며, 지역가입자는 개인이 전액 납부한다.
이상일 제주대 교수는 "임종기 환자에게 의료비 지출이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의학적 효과가 제한적인 검사까지 선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文케어 후폭풍에 '보수 공사' 불가피...직장인 건보료 부담 50% 늘어
인구 구조 변화와 보장성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전문가들도 제도를 유지하려면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실제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는 꾸준히 올랐다. 보험료 산정 기준이 되는 소득과 건강보험료율(건보료율)이 함께 올라 가입자가 실제 납부하는 금액은 계속 늘어나는 식이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월 보수에 건보료율을 곱해 보험료를 계산한다. 급여를 기준으로 보험료가 산정되고 회사(기업)와 근로자가 나눠 부담하는 구조다. 2013년 5.89%였던 직장가입자 건보료율은 2015년 6%대에 진입했고 2023~2025년 7.09%에 이어 내년 7.19%로 인상됐다. 2017년 약 10만7000원이던 직장가입자 월 평균 건강보험료는 2022년 약 14만5000원으로 문재인 케어 시행 6년 만에 약 35% 상승했다. 증가세는 이후에도 이어져 2026년에는 약 16만원 수준으로, 2017년 대비 상승률이 5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은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됐다. 결국 누수를 막기 위한 '보수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급증한 영상 검사 건강보험 수가 조정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제24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건보 수가 체계의 합리적 개편을 추진한다고 지난달 23일 밝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초음파·CT·MRI 등 3800여 개 비급여 항목이 대거 급여로 전환하면서 심화한 수익 불균형을 손보려는 것이다. 문재인 케어가 일반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는 데만 치중하면서 필수 의료 위기를 보다 심화시켰다는 게 의료계 전반의 시각이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 의료비용분석위원회가 공개한 2023회계연도 의료비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기준 영상 진단료(CT·MRI 등)의 비용 대비 수익률은 169%, 방사선치료는 274%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반면 의료진의 노동 투입이 많은 기본 진료료(진찰·입원)는 비용 대비 수익률이 원가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는 과보상된 영상검사 분야 수가를 낮추고 여기서 생긴 재원을 기본 진료비를 비롯해 중증·응급, 소아·분만 등 필수의료 저 보상 문제를 해소하는 데 투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제2차 건강보험종합계획'을 통해 의료비용 분석 결과를 토대로 상대가치점수를 상시 조정할 계획인데, 구체적인 시행 시점이나 단계별 일정은 아직 내놓지 않았다.
과도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재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건강보험 효율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홍석철 서울대 건강금융연구센터장(경제학부 교수)은 "2030년에는 건보료율이 8%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면서 "건보 지출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주환 서울대 의대 교수는 "영상 검사처럼 과보상된 항목의 수가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는 검사와 처방 건수가 늘수록 보상이 커지는 구조인데, 특정 검사 수가를 낮추면 의료기관이 다른 검사나 처방을 늘려 수익을 보전하려는 유인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진찰료·간호료처럼 명백히 저평가된 영역의 보상을 함께 손보지 않으면, 수가 조정이 현장의 행태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