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는 불법 의료기관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수술실과 물리치료실을 병상으로 바꿔 과밀 운영하던 이 병원은 사무장병원으로 밝혀졌고, 병원 이사장은 의료법 위반과 사기, 횡령 혐의로 징역 8년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처벌은 참사를 막지 못했다. 47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쳤다.
정부가 '국민건강보험공단 특별사법경찰권'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수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사안을 대통령이 직접 끌어올린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사무장병원 등 불법개설기관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언급하며 건보공단에 특사경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지시했다.
"금융감독원도 민간기관이지만 특사경 권한을 갖고 있다"는 발언도 나왔다. 대통령은 공단이 요청한 40~50명 규모의 특사경 인력 지정에 대해 "비서실이 챙겨서 해결하라"고 했다.
◇불법은 분명한데, 누가 수사할 것인가
현행 의료법과 약사법은 비(非)의료인의 의료기관·약국 개설을 금지하고 있다. 비의료인이 의료인을 내세워 운영하는 이른바 사무장병원은 개설 단계부터 불법이다. 이들 기관은 환자 치료보다 수익 극대화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해 과잉진료와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기고, 소방·안전시설 미비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을 위협해 왔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불법개설기관이 요양급여비 명목으로 부당 편취한 금액은 올해 10월 기준 약 2조9183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 징수율은 8.67%에 그친다.
공단은 구조적 한계를 호소한다. 전국 의료기관의 진료비 청구 데이터를 가장 먼저 들여다보지만, 강제 수사권이 없어 경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사 착수까지 수개월이 걸리고, 수사 기간은 평균 11개월에 달한다. 그 사이 병원은 폐업하고 자금은 빠져나간다.
공단은 특사경이 도입되면 수사 기간을 3개월로 단축하고 연간 2000억원 규모의 재정 누수를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의료·법률·수사 경험을 갖춘 인력이 있고, 검찰 지휘 아래 특정 범죄에 한정해 수사하겠다"는 설명이다.
의료계는 이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대한의사협회는 대통령이 언급한 '금감원 특사경' 사례부터 문제 삼는다.
의협은 "금감원은 금융시장을 감독하는 중립적 기관이지만, 건보공단은 의료기관과 수가 계약을 맺고 진료비를 지급·삭감하는 당사자"라며 "계약 상대방에게 강제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민사 계약의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집을 압수수색할 권한을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헌법적 쟁점도 거론된다. 공단은 이미 전국 의료기관의 진료 데이터를 보유하고 상시 현지조사를 하는 조직이다. 여기에 수사권까지 더해질 경우, 행정조사와 형사 수사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영장주의와 비례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무장병원 단속을 넘어 단순 착오 청구까지 형사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의협은 대안으로 의료기관 개설 단계에서 지역의사회가 참여하는 심의 제도, 명의대여 자진신고자에 대한 감면 제도, 독립적인 면허관리기구 설립 등을 제시하며 "사후 단속이 아니라 사전 차단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멈춰 있던 국회, 다시 움직이나
국회는 그동안 이 문제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건보공단에 특사경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은 20대와 21대 국회에서 모두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도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다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정 과제 선정에 이은 대통령의 직접 지시, 반복되는 불법개설기관 사건, 건강보험 재정 누수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맞물리면서다. 동시에 "보험자·조사자·수사자가 한 몸이 되는 구조를 허용해도 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도 제기된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16일 업무보고 후 브리핑에서 "의료계의 우려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특사경 권한이 과도하게 행사되지 않도록 법령과 절차에 따라, 불법 사무장병원에 초점을 맞춰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사무장병원 문제를 둘러싼 법적 책임 구조 자체가 현장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이 사무장병원 사건에서 실질 개설자(사무장)의 요양급여비 환수 책임을 명의대여인(의사·의료법인)의 책임 범위와 연동해 제한한 판결이 대표적이다.
해당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 제2항의 '연대 징수' 규정을 근거로, 명의대여인이 감액을 받았다면 실질 개설자에게 부과되는 환수금 역시 그 범위를 넘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법 개설을 주도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책임의 상한을 동일하게 본 것이다.
김중권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판결을 두고 "형식적으로 이름을 빌려준 쪽에 대한 배려(감액)가, 실제로 이익을 가져간 실질 개설자에게 그대로 이전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경우 법적 책임의 크기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서로 어긋나는 결과가 된다"며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수익은 남길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불법적인 명의대여를 근절하겠다는 입법 취지에 비춰보면, 현행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의 징수 처분 구조는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