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국민연금과 출산·청년·응급의료 정책 전반에 대해 "형평성과 실효성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며 제도 전반의 구조적 손질을 주문했다. 저출산 대응을 위한 연금 크레딧 확대부터 청년 국민연금 가입 지원, 응급실 뺑뺑이 문제, 과잉진료 단속까지 의료·복지 시스템 전반을 다시 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업무보고 후반부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이 대통령은 16일 오후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국민연금 출산·군복무 크레딧 제도를 언급하며 "아이를 낳는 행위는 이제 사회 유지에 기여하는 공익적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원은 가능한 범위에서 대폭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국민연금 출산 크레딧을 둘째부터 인정하던 현행 제도를 개편해, 내년부터 첫째와 둘째는 각각 12개월, 셋째는 18개월의 가입 기간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첫째와 둘째도 차등을 둘 필요가 있는지 검토해볼 수 있다"며 추가 개선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근 출생아 수가 1년 넘게 월별로 증가한 배경과 관련해 복지부는 인구 구조적 요인이 크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스란 복지부 1차관은 "코로나19 이후 지연됐던 결혼이 재개되고, 베이비붐 세대 자녀들이 출산기에 진입하면서 가임 여성 수가 일시적으로 늘어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복지부는 올해 출생아 수 전망치를 약 25만4000명 수준으로 제시하며 "구조적으로 추세가 이어지긴 어렵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이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 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년층 국민연금 정책을 둘러싼 형평성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청년 첫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 정책과 관련해 "정보와 여력이 있는 소수만 혜택을 보는 구조는 정의롭지 않다"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그는 "소급 납부 제도를 아는 사람만 이용해 연금 가입 기간을 늘리는 것은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차라리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거나, 재정 부담이 문제라면 기간을 제한하는 방식이 더 공정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재임 시절 국민연금 소급 납부의 실질적 효과를 알게 된 일화를 소개하며 "정책은 빠르고 정보 많은 사람만 유리하게 작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2027년 도입을 목표로 청년 첫 보험료 지원을 준비 중이지만, 이 대통령은 "이 역시 또 다른 불공정을 낳을 수 있다"며 제도 설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주문했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구급차 안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119 구급대원이 병원을 찾아 전화를 돌리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며 "환자를 거부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복지부는 광역 단위 상황실을 중심으로 중증 환자 이송 병원을 신속히 지정하는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응급실 뺑뺑이 대책을 별도로 국무회의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재정 누수를 초래하는 과잉진료와 보험사기 단속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과잉진료와 허위 청구는 필수의료 재원을 갉아먹는 요인"이라며 "심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은 동일 환자의 다중 병원 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 중이며, 건보공단에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인력도 충분히 배치해 확실히 잡아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복지 예산이 투입되는 민간단체 관리 문제를 언급하며 "일부 단체가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체 지원 기준을 실제 회원 수와 운영 투명성에 연동하고, 회장 장기 집권과 같은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