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드라마를 보면 수술은 봉합사의 매듭을 짓는 장면으로 끝난다. 병변을 제거하고 혈관이나 신경을 잇는 큰 고비를 넘겼다고 쉽게 볼 일은 아니다. 매듭을 너무 세게 당기면 피가 통하지 않고, 느슨하게 하면 수술 부위가 벌어져 덧난다.
외과 의사와 기계공학자가 손잡고 초보 의사라도 완벽한 봉합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듭을 개발했다. 미리 만들어둔 매듭이 풀릴 때까지 봉합사를 당기면 절개 부위가 완벽하게 붙는다. 봉합사에 주는 장력(당기는 힘)이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일종의 브레이크를 단 셈이다.
중국 저장대 의대 외과의 카이 슈준(Xiujun Cai) 교수와 항공우주공학부의 리 티펑(Tiefeng Li) 교수 연구진은 "수술 봉합사 매듭의 기하학적 구조와 마찰력을 정밀하게 제어해 특정 힘으로 당겼을 때 풀리도록 프로그램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지난 2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외과 의사는 봉합사를 얼마나 세게 당길지 눈과 손으로 가늠하는데, 이는 수년간 숙련이 필요한 능력이다. 연구진이 개발한 '미끄럼 매듭(slipknot)'은 누구나 숙련된 의사만큼 봉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매듭은 실 한쪽 끝을 당기면 풀리는 고리 형태다. 봉합 부위에 매듭을 지을 때 봉합사의 다른 부분에 있는 미끄럼 매듭이 풀릴 때까지 당기면 된다. 연구진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미끄럼 매듭을 이용한 대장 수술은 기존 봉합법에 비해 혈류 회복 속도가 더 빠르고, 누출이나 흉터가 덜 발생했다고 밝혔다.
리 교수는 "미끄럼 매듭은 단순해 보이지만 내부 역학은 복잡하다"며 "매듭이 풀릴 때 실은 구부러지고 꼬이거나 미끄러지며 마찰을 일으키고, 매듭의 기하학적 구조가 매우 빠르게 변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물리학을 이용해 봉합사에 적절한 장력을 줄 수 있도록 미끄럼 매듭을 만들었다.
먼저 다양한 실로 만든 매듭이 풀리는 데 어떤 요인이 작용하는지 실험으로 규명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매듭의 조임 정도나 실의 표면 거칠기 같은 특성과 매듭을 푸는 힘 사이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정식을 만들었다. 연구진은 앞으로 외과 의사들이 미끄럼 매듭이 미리 묶인 실을 사용하거나, 필요할 때마다 미끄럼 매듭을 만드는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은 의사가 직접 손으로 촉감을 느끼지 않고 수술하는 복강경 수술이나 로봇 수술 분야에서 특히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사가 미끄럼 매듭이 풀릴 때까지 로봇 팔이 봉합사를 당기도록 조종하면 절개 부위를 적당한 힘으로 봉합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하면 로봇이 미끄럼 매듭이 풀릴 때까지만 실을 당기도록 스스로 배울 수도 있다.
캐나다 캘거리대 의대의 신경외과 의사이자 로봇 개발자인 가넷 로이 서덜랜드(Garnette Roy Sutherland)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봉합사는 지난 수십 년간 실질적인 변화가 없었다"며 "이번 논문 저자들이 제안한 것과 같은 봉합사가 임상에 적용된다면, 기존 수술 기술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9673-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