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세대 줄기세포 기업인 파미셀(005690)을 이끄는 김현수 대표는 아주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출신이다. 지난 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김 대표는 "왜 안정적인 대학병원에서 나와 어려운 길을 가려 하느냐는 말을 무수히 들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교수로 재직하던 2002년 자신의 전문 분야를 활용해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겠다고 창업했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조혈모세포가 있는 골수가 전문 분야였다"며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을 시행한 경험이 창업의 출발점이 됐다"고 했다. 조혈모세포는 적혈구와 백혈구, 혈소판 등 다양한 혈액 성분을 만드는 세포이다.계속 증식하면서 여러 세포로 분화하는 성체줄기세포의 하나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은 대부분 기술 개발에 투자하느라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파미셀은 가파른 실적 성장세로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회사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16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배 급증했다. 지난해 매출은 약 648억원이었는데, 올해 연간 매출은 11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회사는 전망했다.
◇ "AI·줄기세포 두 개의 성장 엔진"
파미셀의 성장 배경엔 두 축의 사업 구조가 있다. 회사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판매·보관하는 '바이오메디컬사업부', 신약 개발에 쓰이는 원료를 개발하고 반도체와 통신 분야 핵심 부품 소재를 생산하는 '바이오화학사업부'로 구성돼있다. 김 대표는 2012년 바이오 소재 전문 기업인 아이디비켐을 인수하고 파미셀에 흡수 합병해 사업을 추진했다.
김 대표는 "작년 하반기부터 바이오화학사업부의 성장세가 본격화했다"며 "인공지능(AI) 가속기 기판에 쓰는 원료 물질인 저유전율 전자 소재 매출이 급격히 늘면서 회사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
AI 열풍이 불 미래를 예견한 것일까. 그는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사업 다각화를 노린 건 아니었다"며 "단백질 의약품이나 개량 신약에 필요한 PEG·핵산(뉴클레오시드) 기술의 가치를 보고 인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PEG는 폴리에틸렌글리콜을 말한다. 이 물질은 약물 전달 기술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이다. 단백질 의약품이나 개량신약에 결합해 약물을 보호해 체내 반감기를 늘리고, 안정성을 높인다. 뉴클레오시드는 유전물질인 DNA·RNA의 핵심 원료로, 유전자 진단·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
김 대표는 "화학사업부 인수 당시 매출은 적었고 적자였다"며 "인수 후 공장 이전과 설비 확충을 위한 투자를 이어가 확보한 기술이 현재 회사의 성장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파미셀은 mPEG·핵산을 글로벌 제약사들에 공급하고 있다.
화학사업부는 반도체 회로 간 전기 간섭을 줄여 신호 전송 속도와 효율을 높이는 저유전율 소재도 개발해 대기업 계열사에 공급하고 있다. 김 대표는 AI 관련 전자 소재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내년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울산에 제3공장을 짓는다"며 "이곳에서 화학 전자재료뿐 아니라 인공혈액도 생산할 것"이라고 했다.
◇ "줄기세포·AI 융합해 노화 억제와 기능 회복"
김 대표는 기업 대표로 있으면서 여전히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회사가 개발한 줄기세포 치료제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진료를 놓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숨이 차서 병원 한 바퀴도 못 돌 정도인 심근경색 환자가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호전된다"며 "간경화, 신장질환 환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최근 아부다비 같은 중동 지역에서 찾아오는 외국인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파미셀은 2011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으로부터 급성심근경색 줄기세포 치료제인 '하티셀그램-AMI'에 대한 품목허가를 받았다. 세계 최초로 승인을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이다. 이후 간경변과 만성 신부전 환자를 위한 줄기세포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한 첨단재생의료법 개정안이 발판이 돼 파미셀의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김 대표는 "간경변 치료용 줄기세포 치료제 셀그램-LC의 임상 3상 시험은 현재 환자 모집이 80%가량 완료됐다"며 "임상시험이 마무리되면 파미셀은 국내에서 두 가지 줄기세포 치료제를 보유한 유일한 기업이 된다"고 했다.
김 대표는 후속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도 소개했다. 셀그램-CKD는 파미셀이 개발한 만성 신장질환 줄기세포 치료제다. 2024년 임상 1상 시험에서 안전성을 입증했다. 김 대표는 "셀그램-CKD는 내년 초 첨단 재생의료 임상 연구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발기부전 치료제로 개발 중인 셀그램-ED는 임상 2상 시험을 마치고 추적 관찰 중"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파미셀의 미래 성장 전략 핵심 키워드로 '역노화(reverse aging)'와 '바이오 AI', 'DNA 메모리'를 꼽았다.
그는 "줄기세포 치료를 받은 환자들을 10여 년 추적한 결과, 노화 관련 유전자 8개가 현저히 감소했고 약 740개 유전자에서 역노화 패턴이 관찰됐다"며 "줄기세포가 세포 수준에서 '리주버네이션(rejuvenation·회춘)'을 유도한다는 신호를 확인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최근 '줄기세포 노화의 바이오마커(생체지표) 및 이를 이용한 노화 평가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특허를 출원했다. 그는 "세포의 생물학적 나이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노화 억제 치료의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향후 AI 기반의 환자 맞춤형 항노화 치료제 개발 핵심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DNA로 만든 메모리 칩도 연구 중이다. 김 대표는 "DNA는 A·T·G·C 네 가지 염기로 정보를 저장할 수 있어 0과 1 이진법에 기반한 실리콘 칩보다 훨씬 높은 저장 밀도를 갖는다"며 "파미셀이 보유한 PEG 기술과 나노 소재 역량을 기반으로 DNA 메모리 구현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