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말초 면역 관용'을 발견한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말초 면역 관용의 원리와 조절 T세포(면역세포)의 역할을 통해 면역 체계가 인체에 해를 가하지 않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들의 연구는 자가면역질환과 암 치료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 시각)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메리 브랑코(Mary Brunkow·64) 미국 시스템생물학연구소 수석 프로그램 매니저, 프레드 람스델(Fred Ramsdell·65) 미국 소노마 바이오테라퓨틱스 고문, 사카구치 시몬(Shimon Sakaguchi·74) 일본 오사카대 석좌교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아군 공격하지 않도록 막는 면역 전략
면역세포는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외부 침입자의 표면 단백질을 항원으로 감지하고 항체를 결합시켜 제거한다. 면역 체계는 이런 항원항체 반응을 통해 인체를 보호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상 세포를 침입자로 오인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류마티스 관절염, 1형 당뇨병, 크론병, 루푸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이렇게 발생한다.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은 인체를 보호하는 군대인 면역세포가 아군인 정상세포를 오폭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인체 세포의 단백질인 자가 항원(self antigen)에 대해 면역 체계가 반응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면역 관용은 '우리 편을 정확히 인식해서 면역계가 공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면역 관용은 중추 면역 관용(central immune tolerance)과 말초 면역 관용(peripheral immune tolerance)으로 나눌 수 있다. 항원을 감지하고 공격하는 면역세포인 T세포는 흉선에서, 항체를 생산하는 B세포는 골수에서 각각 중추 면역 관용을 형성한다. 자가 항원에 반응하는 T세포나 B세포는 이 과정에서 제거되거나, 조절 T세포로 분화한다. 또는 B세포가 자가 항원에 반응하지 않도록 바뀐다.
◇사카구치 시몬, 조절 T세포를 발견
사카구치 교수는 말초 면역 관용의 핵심인 조절 T세포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사카구치 교수는 1995년 국제 학술지인 '면역학 저널(The Journal of Immunology)'에 면역 체계를 진정시키는 T세포 표면에 CD4 단백질뿐만 아니라 CD25라는 단백질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T세포가 바로 조절 T세포이다.
말초 면역 관용은 중추 면역 관용 과정이 다 하지 못한 숙제를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일부 면역세포는 자가 항원에 결합했지만 제거되지 못하고 인체 말초 부위로 이동할 수 있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 말초 면역 관용이 나타나며, 주로 이차 림프 기관들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 가장 활발히 참여하는 것이 조절 T세포이다.
조절 T세포는 다른 면역세포가 정상 인체 세포의 단백질과 결합한 것을 감지하고 해당 면역세포를 진정시킨다. 말하자면 아군을 적군으로 착각한 동료를 발견하고 오인 사격을 방지하는 것이다.
◇유전자 변이가 조절 T세포 조절… 새 치료법 지평 열려
브랑코 수석 매니저와 람스델 고문은 사카구치 교수의 연구와 맞닿는 조절 T세포의 발생 정도를 규명했다. 이들은 같은 생명공학 회사에서 근무하던 2001년 '네이처 유전학(Nature Genetics)'에 'Foxp3'라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을 때 자가면역질환에 취약해진다는 쥐 실험 결과를 발표한다. 인간에게 Foxp3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을 경우, IPEX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후 사카구치 교수는 Foxp3이 조절 T세포의 발생을 조절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연구로 세 과학자의 성과인 조절 T세포를 통한 말초 면역 관용 연구가 완성됐다. 이후 종양이 면역 체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조절 T세포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면역 체계가 종양에 접근할 수 있도록 조절 T세포 벽을 없애는 연구가 진행됐다. 또 자가면역질환에서는 조절 T세포의 생성을 촉진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들은 면역 체계의 수호자인 조절 T세포를 발견해 새로운 연구 분야의 토대를 마련했다"며 "이를 통해 자가면역 질환을 치료하고, 더욱 효과적인 암 치료법을 제공하며, 줄기세포 이식 후 심각한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연구자들이 조절 T세포를 질병 퇴치에 활용하는 방법을 시험하는 사례는 훨씬 더 많다"면서 "메리 브랑코, 프레드 람스델, 사카구치 시몬은 혁신적인 발견을 통해 면역 체계가 어떻게 조절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을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참고자료
Science(2003), DOI: https://doi.org/10.1126/science.1079490
Nature Genetics(2001), DOI: https://doi.org/10.1038/83784
Nature Genetics(2001), DOI: https://doi.org/10.1038/83707
The Journal of Immunology(1995), DOI: https://doi.org/10.4049/jimmunol.1100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