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행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과 아동 25명의 사망을 연결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학계에선 '백신·신약 불신자'로 유명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 보건복지부 장관 주도 하에 이뤄지는 섣부른 발표가 보건 당국의 신뢰를 흔들고 백신 회의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현지 시각)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 보건 당국자들이 코로나19 백신과 아동 25명의 사망을 연결 짓는 보고서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보고서는 오는 18~19일 열리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 회의에서 다뤄질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당국은 백신 이상 반응 보고 시스템(VAERS)에 접수된 자료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VAERS는 환자, 의료진뿐 아니라 일반인도 누구나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을 신고할 수 있는 공개 데이터베이스다. 이런 특성 때문에 데이터의 신뢰성과 정확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CDC와 미 보건복지부(HHS)도 이 시스템이 사망과 백신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용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또 CDC는 지난 6월 ACIP 회의에서 코로나19 관련으로 입원했다가 사망한 아동 25명 가운데 백신 접종 대상이었던 16명 중 정해진 일정대로 백신을 모두 맞은 아동은 한 명도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가 어린이 25명 사망을 앞세워 백신 안전성 분석에 나서자, 백신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WP는 면밀한 분석 없이는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의학자와 보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라고 전했다. 영아들은 발열이나 발작, 영아 돌연사 증후군(SIDS) 등 특정 의학적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본래 높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수십 년간 백신 안전성과 효과를 추적해 온 과학자들은 "이 보고서는 극히 제한적이고 인과관계조차 입증되지 않은 사례를 전체 백신 안전성 문제로 일반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아·청소년 감염병 백신 개발에 참여했던 한 연구자는 "세계 각국에서 수억 건 이상 접종이 이뤄졌고, 주요 학술지와 국제 보건기구를 통해 안전성이 검증된 코로나19 백신을 특정 사례로 흔드는 것은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목적이 앞선 행위"라고 지적했다.
백신 역학 전문가는 "사망자 25명이라는 숫자는 절대적으로 가볍지 않지만, 이는 자연 감염이나 기저질환, 혹은 우연적 요인과의 구분이 필요하다"며 "이를 종합 검토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발표하면 대중은 '백신=위험'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번 논란은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장관의 행보와 맞물려 있다. 그는 지난 6월 ACIP 기존 위원 17명을 전원 해임하고 자신의 인사들을 새로 임명했다. 이들 중엔 백신 정책에 비판적인 견해를 지닌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미국 보건 정책 전반에 반(反)백신 기류가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최근에는 세계적 백신 권위자인 폴 오핏 박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문위원회에서 배제됐다. 미국에서 주요 백신 전문가들의 영향력이 약화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보도 직후 대표적인 코로나19 백신 개발사인 미국 제약기업 모더나와 화이자 등의 주가가 전일 대비 3~8% 내렸다. 모더나는 성명을 통해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의 안전성은 회사와 FDA, 전 세계 규제 당국이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아동과 임산부에서 새로운 안전성 우려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mRNA
mRNA는 DNA의 유전 정보를 복사한 뒤 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에 이를 전달한다. 코로나19 백신은 이 원리를 이용해 바이러스 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체내에 주입해 항체 생성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10년 이상 걸리는 백신 개발 과정을 코로나 백신은 약 11개월로 줄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