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포성 섬유증 치료제를 개발해 환자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과학자들이 미국 래스커상(Lasker Award)을 받았다. 래스커상은 미국 래스커 재단이 의학·공중보건 연구 분야 연구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1945년 이래 래스커상을 받은 수상자 중 95명이 노벨상까지 수상해, '미국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래스커 재단은 11일(현지 시각) 올해 래스커 드베이키 임상 의학 연구상(The Lasker DeBakey Clinical Medical Research Award) 수상자로 미국 제약기업 버텍스 파마슈티컬스(Vertex Pharmaceuticals)의 폴 네굴레스쿠 수석 부사장과 헤수스(티토) 곤살레스 전 연구원, 아이오와대 의대 마이클 웰시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받는 상금은 총 25만달러(약 3억 4000만원)다.
낭포성 섬유증은 낭포성 섬유증 막(膜) 투과성 조절 단백질(CFTR)을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발생하는 유전질환이다. 이로 인해 폐·췌장 등 주요 장기에 끈끈한 점액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돼 환자가 호흡 곤란과 영양 결핍을 겪는다. 현재 미국에는 약 4만명, 전 세계적으로 94개국에서 10만여명의 환자가 있다.
기존 치료는 점액을 묽게 하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대증 요법 수준에 그쳤다. 이 탓에 환자는 대부분 어린 시절을 넘기지 못했고, 살아남더라도 평균 수명이 40세에 못 미쳤다. 수상자들은 단백질이 세포에서 형성될 때 이를 바로잡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낭포성 섬유증 치료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를 토대로 버텍스가 삼중 복합 치료제 '트리카프타(Trikafta)'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트리카프타는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거쳐 시장에 나왔다. 이 약은 환자의 폐 기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기대 수명을 최대 80세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전 세계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약 3분의 2가 이 약을 쓰고 있다.
래스커 재단은 "이 연구가 낭포성 섬유증을 사형 선고에서 관리 가능한 질환으로 바꿨다"며 "환자들에게 활기찬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했다.
수상자인 네굴레스쿠 부사장은 "질병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고 직접 겨냥하는 데 해법이 있었다"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웠지만 결국 옳은 길임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곤살레스 전 버텍스 연구원도 "신약 개발은 늘 산을 오르는 것 같지만, 잠시 멈춰 성과를 돌아볼 수 있어 의미가 크다"며 "연구자 수천명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리카프타는 연간 치료비가 30만달러 (약 4억원)에 달해, 환자가 쉽게 쓰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버텍스는 이를 인식해 현재 14국에서 무상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네굴레스쿠 부사장은 "모든 환자가 트리카프타로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래스커상은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해 노벨상으로 가는 관문으로 꼽힌다. 래스커상 외에도 '실리콘밸리 노벨상'으로 불리는 브레이크스루상, 이스라엘 울프상도 같은 평가를 받는다. 올해 래스커상 수상자인 네굴레스쿠 부사장은 2023년 브레이크스루 생명과학상도 받아 노벨상 수상 후보 1순위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