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예방 백신이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은 물론 치매 예방 효과까지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전 세계 과학자들이 원인 규명에 나섰다. 사진은 의료진이 대상포진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고대안암병원

대상포진은 면역력이 떨어질 때 신경계에서 발병해 극심한 통증과 피부 발진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그런데 이를 막는 백신이 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은 물론 치매 예방 효과까지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전 세계 과학자들이 원인 규명에 나섰다.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찰스 윌리엄스(Charles Williams) 글로벌 백신 의학 부문 부국장은 전 세계 19개 연구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 18세 이상 성인에서는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평균 18% 낮아졌고, 50세 이상에서는 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28일(현지 시각)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오는 30일 스페인에서 열리는 유럽심장학회(ESC)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대상포진은 수두를 일으키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가 신경계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재활성화하면서 발생한다. 피부 발진과 심한 신경통을 일으키는 흔한 질환으로, 3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겪는다. 특히 이 바이러스는 뇌 신경의 대·소 혈관에도 침투할 수 있어 뇌졸중 같은 심혈관계 합병증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분석에는 바이러스의 일부 단백질을 이용해 만든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과 살아있는 바이러스로 만든 '생백신'이 모두 포함됐다. 연구 결과, 두 종류 백신 모두 심근경색과 뇌졸중 발생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확인됐다.

다만 이번 연구는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그쳤다. 대상포진 백신이 어떤 원리로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윌리엄스 부국장은 "이번 분석에서 대상포진 백신과 심혈관 사건 위험 감소 사이에 연관성이 확인됐지만, 이 효과가 백신 자체 때문인지 확인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상포진 백신의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는 앞서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지난 5월 경희대 의대 연동건 교수 연구팀은 2012~2021년 50세 이상 한국인 약 220만명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상포진 생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은 심근경색·뇌졸중 위험이 평균 23% 낮았고, 예방 효과는 최대 8년간 지속됐다. 연 교수도 대상포진 백신이 어떻게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지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심혈관질환은 여전히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한다. 매년 300만명 이상이 심근경색과 뇌졸중으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사회와 의료 체계 전반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과학계는 기존 항고혈압제, 지질저하제, 당뇨 치료제 외에 새로운 예방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최근 일부 심장질환 전문가들은 백신을 심혈관질환 예방 수단의 하나로 공식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대상포진 백신의 효과는 신경계 질환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4월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1925~1942년에 태어난 영국 웨일스 지역 주민들을 7년간 추적한 결과, 백신 접종자의 치매 발생 위험이 비접종자보다 20% 낮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참고 자료

European Heart Journal(2025), DOI: https://doi.org/10.1093/eurheartj/ehaf230

Nature(2025), DOI: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5-08800-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