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를 교정해 치명적인 바이러스 감염을 원천 차단한 돼지들./eGenesis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 간을 간부전(肝不全) 환자에게 이식하는 최초의 임상시험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15일(현지 시각) 전했다. 미국과 영국 생명공학 회사인 이제네시스(eGenesis)와 오가녹스(OrganOx)가 임상시험에 참여한다.

간부전은 간 기능이 떨어져 혈액 노폐물을 해독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세계 이종이식학회 전 회장인 웨인 호손 호주 시드니대 이식 외과 교수는 네이처에 "사망률이 50%에 달하는 간부전 치료에 이번 임상시험이 큰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많지만 기증자 수는 적다. 한국만 해도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국내 장기 이식 대기자는 5만1800여명(2023년)이다. 장기 기증자는 400명대로 부족하다.

이에 사람과 장기 구조가 비슷한 돼지 장기를 이식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은 돼지 장기를 침입자로 보고 공격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돼지 간을 인간과 비슷하게 유전자 변형해 사용하려는 것이다.

이번 임상에서 돼지 간을 이식받는 환자는 4명으로, 연령대는 1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하다. 간부전이 만성에서 급성으로 악화했거나, 간 기능에 문제가 생겨 간성 뇌병증(뇌 질환)이 생긴 환자도 포함됐다.

임상시험을 통해 돼지 간을 환자에게 72시간 이식해 제대로 기능하는지, 혈액 노폐물을 제거하는지 확인한다. 이후 1년 동안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추적 관찰한다. 규제 당국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임상시험 대상을 20명으로 늘릴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웨인 호손 교수는 "돼지 간이 간부전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살리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환자가 이식용 간을 구할 때까지 돼지 간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의미다.

돼지 간을 사람에게 이식하는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중국 과학자들은 지난달 '네이처'에 유전자 변형 돼지의 간이 뇌사자에게 이식된 뒤 10일간 정상적으로 기능했다고 밝혔다.

돼지 간은 이식한 지 2시간 뒤부터 담즙을 분비했다. 간이 합성하는 단백질인 알부민도 정상 분비되는 것을 확인했다. 뇌사자 가족의 요청으로 실험은 10일 만에 종료됐다. 실제 간부전 환자에게 임상시험이 진행되는 것도 앞서 시험에서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덕분이다.

e제네시스는 지난해 FDA 승인을 받고 신부전 환자에 유전자 변형 돼지 신장을 이식했다. 이 환자는 올해 2월 병원에서 퇴원했으며 투석도 중단했다. 이 회사는 올 1월 두 번째 환자에게 유전자 변형 돼지 신장을 이식했다.

돼지 심장도 환자에 이식된 바 있다. 미국에선 지난 2023년 10월 심부전 환자가 돼지 심장을 이식받고 6주 만에 숨지는 일이 있었다. 당시 환자는 별다른 거부 반응 없이 재활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5-01209-6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87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