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MSF) 한국사무소에서 만난 크리스토스 크리스토우(Christos Christou) 국제회장(50)은 "분쟁지역에서 의약품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한국과 찾고 싶다"고 말했다./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한국은 백신, 치료제, 진단·의료기기 등 바이오의학 분야를 이끄는 나라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의약품 연구개발(R&D)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길 원합니다."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국경없는의사회(MSF) 한국사무소에서 만난 크리스토스 크리스토우(Christos Christou) 국제회장(50)은 "한국의 여러 대학과 교류하고 신약 연구 개발을 촉진해 의약품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한국과 찾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1971년 설립된 인도주의 의료단체로, 4만7000명이 넘는 구호 활동가가 무력 분쟁, 자연재해 등으로 피해를 입은 70국 500여 현장에서 의료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공로로 1996년 서울평화상, 199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리스 출신인 크리스토우 회장은 아테네 에반젤리스모스 병원, 영국 킹스칼리지병원 등에서 응급·외상외과 의사로 일했다. 2002년 국경없는의사회에 활동가로 합류해 그리스 내 난민과 이주민 지원을 시작으로, 남수단·이라크·카메룬 등 분쟁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다가 2019년 6월 국제 회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지역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전쟁과 내전이 진행 중인 예멘, 아이티, 에티오피아, 카메룬 등이다. 크리스토우 회장은 "강물이 오염돼 장염, 설사, 말라리아, 콜레라 등 수인성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며칠을 걸어 겨우 병원에 가더라도 의약품이 부족하거나 없어 제대로 된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과의사인 크리스토스 크리스토우(Christos Christou) 국경없는의사회(MSF) 국제회장이 2013년 남수단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국경없는의사회

가장 필요한 의약품은 질병 예방을 위한 백신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매년 수백만 명에게 홍역, 뇌수막염, 황열병, 콜레라 등 백신 접종을 실시하고 있지만, 지역 주민 모두에게 접종을 하기엔 백신과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도 필수 의약품을 구할 수 있도록 1999년 '액세스 캠페인(Access Campaign)'을 시작했다. 분쟁 지역뿐 아니라 중·저소득 국가에서 꼭 필요한 약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도록 제약사와 정부를 설득하고 홍보하는 활동이다

최근에는 감염병 치료제와 질병을 진단할 의료기기도 절실하다고 했다. 크리스토우 회장은 "요즘에는 바이러스 변이로 인해 항생제가 잘 들지 않아 적절한 치료제를 써야 하는데, 이 또한 부족하다"며 "질병을 진단할 엑스레이, 초음파 장비는 상상할 수 없고, 이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진단키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재 국내 진단기기 개발업체인 에스디바이오센서(137310)와 소외열대질환에 대한 진단 도구 개발을 위해 소통하고 있다. 소외질환은 저개발 국가나 분쟁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 댕기열 등을 말한다.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해도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 외면한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열대지방에서 주로 발생하는 20가지 질병을 소외열대질환으로 지정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03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과 함께 국제 비영리 단체인 소외질환신약개발재단(DNDi)도 설립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오전 의장집무실에서 크리스토스 크리스토우 국경없는 의사회 국제회장을 접견하고 있다. /국회의장실 제공

크리스토우 회장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했다. 한국은 2004년부터 국경없는의사회 구호 활동에 참여했지만 2023년까지 참여 인원이 75명에 그쳤다. 2023년 현재 국제 구호활동가 4160명 가운데 한국인 활동가는 12명으로, 전체 아시아 출신 활동가의 4%에 불과하다.

크리스토우 회장은 한국 활동가가 적은 이유로 여행금지 제도를 꼽았다. 한국 정부는 여권법 제 17조에 따라 특정 국가를 여행금지국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을 방문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현재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시급한 가자지구와 수단, 우크라이나, 예멘,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19개 지역이 우리 정부가 정한 여행금지 지역에 해당된다.

여행금지 지역이라도 영주·취재·공무 등의 목적으로 외교부 장관이 인정하는 경우에는 방문이 허용되기도 하지만, 민간 단체는 포함되지 않는다. 크리스토우 회장은 지난 6일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여행금지법 적용에 민간 단체를 예외로 허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한국 활동가는 의사뿐 아니라 재무, 물류 전문가 등 전문 분야가 다양하고, 매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숙련된 인력"이라며 "이들의 인도적 지원 활동을 더욱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북한 의료 지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고 했다. 과거 북한에서 결핵 치료를 지원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경이 닫히면서 활동이 중단됐다. 크리스토우 회장은 북한 국경이 다시 열리면 의료 지원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