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키우고 있는 비(非)중증·비급여 치료를 ‘관리 급여’로 지정하고, 본인 부담률을 현행 평균 20%에서 90% 이상으로 대폭 올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비중증·비급여 보장을 축소하고 중증 중심으로 보장하는 5세대 실손보험을 마련해, 1~3세대 실손보험 상품 보유자들의 전환을 유도할 계획이다.
도수 치료, 영양주사 등이 대표적인 비중증 비급여 진료 항목으로 꼽힌다. 그동안 급여 항목과 병행 진료하는 경우도 많아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키워왔는데 환자 본인 부담률을 높여 소위 의료 쇼핑과 과잉 진료 행태를 개선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9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비급여 관리·실손보험 개혁 방안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주요 개선 방안 방향성을 공개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토론회를 통해 수렴한 의견 등을 반영해 의료 개혁 2차 실행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날 정부의 비급여 관리 개선 방안을 발표한 서남규 국민건강보험공단 비급여관리실장은 “실손보험과 결합한 비중증 분야 비급여 이용이 전체 비급여 진료비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며 주요 개선 방안을 공개했다.
◇급여+비급여 병행 진료, 환자 부담 높인다
우선 정부는 남용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을 ‘관리급여’로 전환해 건강보험 체계로 편입시키고, 본인부담률을 90∼95%로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관리급여가 되면 건보 체계에서 가격과 진료 기준을 설정해 관리할 수 있다. 현재 의료기관별로 천차만별인 비급여 진료비를 통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서 실장은 도수 치료가 관리급여로 들어올 경우를 예로 들며 “10만원에 도수 치료를 받았다면 9만5000원을 환자 본인이 내고, 5000원은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형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관리급여 항목을 구체화하지는 않았다”며 “관리급여 전환은 비급여 보고제 등 모니터링을 통해 진료량이 갑자기 늘어나거나 의료기관별 진료비 격차가 지나치게 큰 항목에 우선 적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를 하면서 실손보험 청구를 위해 급여 진료를 함께 하는 병행 진료에 대한 급여 제한도 추진한다. 병행 진료 시 급여 진료도 모두 본인이 비급여로 부담하는 것이다.
가령 다초점 렌즈를 삽입하는 백내장 수술의 경우 기존에 수술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고 다초점 렌즈 삽입은 비급여이므로 개인이 전액 부담하는 식이었는데, 앞으로는 이를 100% 본인이 부담하는 식이 된다. 급여인 물리 치료와 비급여인 도수 치료를 섞어 동시에 진료하면, 급여 치료인 물리 치료 비용까지 본인이 내는 식이다. 서 실장은 “병행 진료 급여 제한으로 불이익을 받는 환자가 없도록 의학적 필요가 있다면 급여를 인정할 수 있게 하는 별도 기준을 만들 방침”이라고 했다.
비급여 재평가를 통해 사용 목적과 대상 등을 명확히 하는 한편 재평가 후 안전성과 유효성이 부족한 항목은 퇴출한다. 의료기관마다 달리 쓰이는 일부 비급여 항목의 명칭은 표준화할 예정이다. ‘신데렐라 주사’로 불리는 비급여 주사제를 주성분 기준으로 ‘티옥트산 주사’라고 표시하도록 하는 식이다.
비급여 진료 항목의 가격뿐 아니라 총진료비, 종별 의료기관·지역별 가격 차이, 안전성·유효성 평가 결과, 대체할 수 있는 급여 항목 등 정보도 소상히 공개한다. 이는 새롭게 구축하는 ‘비급여 통합 포털’(가칭)에 게재돼 환자가 특정 비급여 항목에 대한 전국 최저·최고가를 비교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비급여 진료 시 의료진이 가격, 처방 사유, 대체할 수 있는 치료법 등을 설명하고 의무적으로 동의서를 받아 환자 선택권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5세대 실손보험’은 중증 질환에 집중… 임신·출산 신규 보장
비중증·비급여 보장을 제한하고 중증에 집중하는 5세대 실손보험의 주요 골자도 공개됐다. 정부는 5세대 실손보험을 중증 중심으로 설계하는 한편 실손보험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1∼2세대 초기 가입자에게 일정 보상금을 주고 전환을 유도하는 재매입도 추진할 예정이다. 현행 4세대 보험은 주계약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특약으로 비급여 진료의 본인 부담을 보장하는 구조로, 자기 부담률은 급여는 20%, 비급여는 30%다.
5세대 실손보험은 급여 진료는 일반·중증 환자를 구분해 환자 본인 부담률을 달리한다. 일반 환자의 급여 진료비는 건보 본인부담률과 실손보험 자기 부담률을 같이 하는 방안이 된다. 외래 진료 시 의료기 종별에 따라 건보 본인부담률은 30∼60% 수준인데, 실손 자기 부담률도 이와 같은 수준으로 적용해, 환자는 9∼36%를 내는 식이다.
기존에는 건보 본인부담률에 실손의 평균 자기 부담률 20%를 적용해 환자가 최종 6∼12%를 부담했던 것을 생각하면 대폭 인상되는 셈이다. 단 암, 뇌혈관·심장질환, 희귀질환 등 중증 환자의 경우 최저 자기 부담률 20%만 적용해 현행 보장 수준을 유지한다.
또 그동안 보장하지 않았던 임신·출산 급여비를 신규 보장한다는 구상이다. 또 비급여 진료를 보장하는 특약의 경우 중증과 비중증을 구분해 출시 시기를 달리한다.
5세대 실손보험은 초기에는 중증 비급여만 보장하고, 추후 비급여 관리 상황을 평가한 뒤 2026년 6월 이후 비중증을 보장하는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비중증·비급여 진료를 보장하는 특약을 추후에 출시하더라도 보장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축소하고, 본인 부담률을 현행 30%에서 50%로 상향할 방침이다. 금융감독원은 실손 청구가 많은 비급여 항목에 대한 심사를 강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