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창립 117주년을 맞이한 독일의 글로벌 제약사 멀츠(Merz)는 세계 미용의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유럽 주요국과 미국, 캐나다, 한국 등 28개국에 직접 진출해 있는데, 특히 한국에서 초고속 성장 중이다.
멀츠는 1908년 설립된 독일 제약 기업으로, 신경계통 치료제로 기반을 넓혀왔다. 이후 2005년 보툴리눔 톡신 ‘제오민’ 출시를 시작으로 메디컬 에스테틱(의료 미용) 사업에 본격 집중했다. 보툴리눔 톡신은 식중독균인 보툴리눔균(菌)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근육 마비를 일으켜 주름을 펴는 효과가 있다.
특히 열에너지 기반 미용의료 시술의 대명사가 된 의료기기 ‘울쎄라’가 최근 이 회사의 에스테틱 사업 성장을 이끌었다. 울쎄라는 2009년 전 세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초음파 리프팅 기기다. 고강도 집속 초음파(HIFU) 에너지를 피부에 집중 전달해 열을 발생시켜 조직을 응고, 수축해 주름을 개선하고 탄력을 높이는 원리다.
멀츠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건 2010년이다. 회사에 따르면 멀츠 에스테틱스 코리아의 매출은 2014년 약 80억원 규모에서 지속적으로 늘어 연매출 3000억원 달성을 내다보고 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50%대로, 그룹 전체 성장률을 웃돌며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부터 멀츠 에스테틱스 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유수연 대표는 지난달 서울 강남구 사옥에서 만나 “2014년 제가 입사한 이래 회사의 경영 실적은 매년 성장했다”며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연매출은 전년 대비 약 55% 늘어 약 3000억원 규모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2014년 입사 당시 40명 규모였던 전체 직원 수는 현재 160명으로 늘어 곧 200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기점으로 소비 트렌드 변화”
유 대표에 따르면 멀츠 에스테틱스 코리아는 2019년 12월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성장 속도가 붙었다. 그는 “코로나 초기 6개월은 매출이 감소하며 혼란스러웠다”면서 “하지만 이후 매출이 급반등해 코로나 이전에 약 30%였던 연 매출 증가율이 50% 이상으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미용의료 시장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만 해도 15개 이상의 제품이 출시돼 있을 정도다. 울쎄라가 시장에 나와 큰 인기를 끌자 국산 리프팅 기기들도 다수 출시됐다. 그럼에도 회사의 성장 폭은 더 커진 것이다.
성장 배경에 대해 유 대표는 달라진 소비 흐름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코로나 시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대항한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라는 단어가 시장에 나왔듯,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품질 좋은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 경향이 강해지면서 프리미엄 브랜드인 멀츠 제품을 택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코로나 이전엔 저렴한 가격과 대량 시술을 강조하던 병원이 많았는데 이후 프리미엄 시술과 장기적인 고객 관계를 중시하는 병원이 증가했고, 이 과정에서 멀츠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굴에 받는 피부미용 시술의 경우, 저가에서 고가로의 전환은 가능해도 고가에서 저가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며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봤다.
이를 겨냥한 홍보마케팅 전략도 주효했다. 울쎄라 정품 인증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시술 후 병원에서 주는 정품 스티커의 QR코드를 통해 자신이 정품으로 시술받았는지를 확인해 주는 앱(app, 응용프로그램) 서비스다. 시술 일정도 관리할 수 있고, 포인트 적립을 쌓아 추가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의사 대상 임상 교육과 소비자 대상 브랜드 마케팅도 강화해 왔다.
◇“매출의 15~20% R&D 투자… 제품력 가장 중요”
유 대표는 “기업의 성장 비결은 무엇보다 제품 경쟁력에서 나온다”며 “멀츠는 매년 매출의 15~20%를 R&D에 재투자한다”고 밝혔다. 멀츠는 제오민, 울쎄라뿐 아니라 히알루론산 필러 ‘벨로테로’ 체내 미네랄 성분(CaHA)을 피부에 주입하는 주사제 ‘레디어스’ 등 제품군을 연이어 개발·출시하며 시장 침투력을 키웠다.
시장을 선도하려면 최초가 되거나 다른 제품과 달라야 한다. 유 대표는 울쎄라와 제오민을 예로 들며 “현재 시장에 하이푸(HIFU) 기기를 비롯한 다양한 열에너지 전달 의료기기가 있지만, 울쎄라는 미 FDA 승인을 받은 유일한 제품”이라며 “실시간 초음파 영상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피부 근막층에 열이 정확히 전달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게 타사 제품과는 다른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제오민은 최초의 복합 단백질이 없는 보툴리눔 톡신 제품”이라며 “보툴리눔 톡신 시술이 대중화하면서 두드러지고 있는 내성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차별점이 있다”고 말했다. 시중에 많은 보툴리눔 톡신 제품이 약물 내 효능에 관여하지 않는 복합 단백질을 갖고 있는데, 복합 단백질이 보툴리눔 톡신 내성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의학계는 지적했다.
멀츠는 지난해 기존 독일 프랑크푸르트 R&D 혁신 센터에 더해 미국 롤리에 R&D 혁신 센터를 추가로 열었다. 의료기기 분야 R&D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유 대표는 “한국 시장 매출 비중이 큰 만큼 현재 글로벌 팀과 함께 R&D 임상 관련 논의도 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1월 미국 롤리 R&D 헤드인 최고과학책임자(CSO) 사만다 커(Samantha Kerr)박사가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 대표는 “현재 멀츠는 20여 개의 R&D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며 “R&D 투자가 생명과학 기업의 지속 성장 열쇠”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중앙대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얀센과 한국MSD 등 글로벌 기업의 판매·마케팅 사업부를 거쳐 2007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 노바티스에서 일반의약품 사업부 대표를 역임했다. 유 대표는 “첫 사회생활은 제약기업 개발부에서 시작했으나 마케팅이 더 적성에 맞았다”며 “고객의 니즈를 찾아 만족을 주는 마케팅에 매력을 느꼈고, 일선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 소통하는 영업 업무부터 시작해 경력을 쌓아왔다”고 했다.
투자 시장 일각에선 미용 의료 시장이 이미 포화해 고(高)성장이 어렵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이런 시각에 대해 유 대표는 “메디컬 에스테틱 시장은 무한대의 잠재력이 있다”며 반박했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도 젊고 아름다워 보이고자 하는 욕구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라면서 “메디컬 에스테틱은 과학과 예술이 융합돼야 하는 분야다. 과학의 진보와 함께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1월 중 신제품이 출시될 예정”이라며 “2025년은 많은 신제품이 나올 것으로 보여 역동적인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새해엔 신제품에 많이 집중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활동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멀츠는 지난해 ‘지속가능개발목표경영지수(SDGBI)’에 에스테틱 업계 최초로 진입했다. 그는 “멀츠는 세계 에스테틱 업계 리더 기업으로서 ESG 활동에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국내에서는 울쎄라 ESG인증병원 캠페인을 비롯한 폐의료기기 안전 관리·환경 보호 활동을 계속 실천하고, 의료진·소비자와의 소통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