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 도요물떼새 수백만 마리가 미국 동부의 뉴저지주와 델라웨어주 사이에 있는 델라웨어만(The Delaware Bay)을 찾는다. 미국 연구진은 40년째 이들의 배설물을 채집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있다./미 뉴저지주 환경보호국

올해 미국에서 철새와 닭·오리, 젖소에 퍼진 고병원성(H5N1)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사람까지 옮겨가면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에 대한 공포가 커졌다. 과학자들은 AI 팬데믹을 막기 위해 새똥부터 뒤지고 있다. 배설물에서 바이러스를 찾아내 누가 첫 숙주였고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아내면 감염 경로를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CNN 방송은 H5N1이 미국 전역의 젖소와 가금류 무리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지원을 받은 새똥 분석 연구 프로젝트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앞으로 전 세계에 전염병 유입에 대한 조기 경고를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난 27일(현지 시각) 소개했다.

세인트주드 아동연구병원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받아 새똥 분석 연구 프로젝트를 40년째 진행하고 있다. 1975년 세계보건기구(WHO)의 AI 바이러스 협력센터로 지정된 세인트주드 어린이 연구병원은 인간과 동물 간의 바이러스 교환에 대해 연구하는 대표 기관이다. 아동연구병원의 로버트 웹스터(Robert Webster) 명예교수는 40년 전인 1985년부터 미국 동부의 뉴저지주와 델라웨어주 사이에 있는 델라웨어만(The Delaware Bay)을 찾아 새똥에 AI 바이러스가 있는지 분석했다.

매년 따뜻한 5월이 되면 수백만 마리의 도요물떼새와 갈매기가 여름 번식지로 이동하기 전 델라웨어만에 잠시 들른다. 산란기 투구게들이 각각 수천, 수만개씩 낳은 알을 먹기 위해서다. 새들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투구게 알을 먹은 뒤 이곳에 배설한다. 웹스터 명예교수는 새똥의 20%에서 AI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그는 철새 떼가 남미와 캐나다 북부의 북극권을 잇는 대서양을 따라 이동하는 것을 토대로 AI 바이러스를 추적했다. 또 새똥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AI 아형 중 두 가지를 제외한 모든 아형을 발견했다.

웹스터는 앞서 1957년 AI 바이러스의 근원지는 야생 오리의 위장(소화기)이며, 이 바이러스가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AI 바이러스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떠올랐다. 지금은 92세인 웹스터를 대신해 세인트주드 아동연구병원 제자인 파멜라 맥켄지(Pamela McKenzie), 패트릭 세일러(Patrick Seiler) 박사가 매년 새똥 수집을 위해 델라웨어만을 찾는다.

멕켄지 박사는 CNN에 "델라웨어만은 조류 독감 바이러스 연구를 위한 보물창고 같다"며 "아직 신종 바이러스를 찾진 못했지만, 새들이 남긴 이 똥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될 경우 새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전 세계에 전염병이 유입되기 전에 조기에 경고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버트 웹스터의 제자 파멜라 맥켄지(가운데)와 패트릭 세일러(왼쪽)가 매년 미국 델라웨어만을 찾아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 새들의 배설물을 채집하고 있다./세인트주드 아동연구병원

H5N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이름처럼 원래 철새나 가금류 같은 조류만 걸렸지만, 최근에는 포유류까지 퍼졌다. 특히 젖소와 접촉한 농장 노동자들이 감염되는 사례가 잇따라 미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으로 미국 잦소 농장 노동자 58명이 H5N1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였다.

세인트주드 아동연구병원 연구진은 델라웨어만에서 수집한 새똥에서 아직 H5N1을 발견한 적은 없다. 대신 최근 두 달 동안 물오리떼에서 D1.1이라는 새로운 AI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지난달 18일 캐나다에서 10대가 감염된 H5N1 바이러스와 같은 유전자형이다. 최근 젖소에 퍼진 AI 바이러스는 유전자형이 B3.13이다.

연구진은 D1.1은 두 개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같은 동물에 침투한 뒤 서로 유전자를 교환한 재조합 바이러스라고 보고 있다. 이를 근거로 D1.1 유전자형 바이러스가 캐나다 중부를 통과해 미시시피강을 따라 멕시코만까지 이어지는 미시시피 철새 이동 경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앞서 2021년에 북미에서 시작된 H5N1 발병도 대서양과 태평양 철새 이동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도요물떼새로 인해 일어났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세인트주드 아동연구병원 연구진은 이번 결과를 근거로 북미의 야생 조류가 새로운 바이러스원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이동하는 조류에 대한 감시가 향후 발병을 막는 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내년 5월에도 새로운 새똥 수집을 위해 델라웨어만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병원의 리사 커처(isa Kercher) 박사는 "새떼는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델라웨어만에 들렀다가 주위에 AI 바이러스를 옮긴다"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H5N1 바이러스가 마침내 사람들에게 위험할 만큼 변이를 일으킬지 알기 위해서는 계속 이들의 경로를 추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