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내년부터 국내 주요 병원과 협력해 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요한 소아청소년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 환자에게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소아암 중 가장 흔하다. 국내에서 매년 약 200명이 발생하고 있다.
30일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선대회장이 남긴 소아암·희귀질환 극복 사업 기부금을 통해 자체 생산한 CAR-T 치료제를 무상으로 제조·공급한다. 이를 통해 환자들은 기존 병원에서 치료를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CAR-T 치료제는 면역 세포인 T세포를 추출한 후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특정 세포를 겨냥하도록 한 것이다. 환자 혈액의 T세포에 암세포를 인식하는 수용체를 주입해 대량으로 증식한 뒤, 다시 환자에게 주입한다. 이를 통해 정상 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암세포만 공격할 수 있다.
특히 이는 재발하거나 기존 항암 치료법이 듣지 않는 불응성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 환자에서 생존율을 약 60%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입증된 혁신적인 치료법이다. 기존 항암치료로 생존율이 향상됐지만 재발하거나 치료에 불응하는 환자의 생존율은 여전히 10~30%로 낮다. 이들에게는 고용량 항암제 또는 전신 방사선 치료 후 건강한 공여자의 조혈모세포를 투여하는 조혈모세포 이식이 치료 대안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기존 항암 치료보다 성적이 좋지만, 재발 위험이 높고 자체 독성으로 폐 기능 저하, 영구 탈모, 영구 불임 등 심각한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병원은 조혈모세포 이식 대상 환자들에게 CAR-T 치료제를 자체 생산해 제공하고 있다.
소아암·희귀질환사업단 소아암사업부장인 강형진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조혈모세포이식은 재발 위험이 아주 높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치료법이지만, 치료 성적이 아직 만족스럽지 않으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CAR-T 임상 연구를 통해 조혈모세포이식 전에 CAR-T를 먼저 투여해 백혈병 세포를 완전히 없애고 이식을 진행해 치료 성적을 높이거나, 가능하다면 이식을 대체해 환자들이 평생 큰 합병증 없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 기업 노바티스의 ‘킴리아’ 같은 기존 상업용 CAR-T 치료는 환자 혈액을 해외로 보내고 생산 후 다시 한국으로 가져와 치료하는 방식인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서울대병원은 자체 GMP(우수의약품제조인증) 생산시설을 활용해 CAR-T 치료제를 병원 내에서 직접 생산해 치료 시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2022년 4월 첫 환자에게 CAR-T를 성공적으로 투여하며 임상 연구를 시작했고 기부금 지원이 시작된 올해 4월부터 더 많은 환자에게 치료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병원은 현재까지 기부금으로 CAR-T 치료를 받은 8명의 환자 모두 백혈병이 완전히 치료됐으며, 특별한 합병증 없이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서울대병원은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과 협력해 다기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환자 약 50명에게 자체 생산 CAR-T 치료제를 공급해 치료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강형진 교수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부금으로 많은 환자들이 CAR-T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