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진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전 세계에서 열풍을 일으킨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원리를 밝혀낸 과학자다. 원래 당뇨 치료제로 개발된 위고비는 식욕을 줄이고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식으로 체중 감량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정확하게 어떤 원리로 이런 효과가 나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최 교수는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메디컬센터 연구진과 함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호르몬이 위고비의 비밀이라는 걸 밝혀냈다.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는 GLP-1을 모방한 물질이다. 그는 GLP-1 유사체가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신경세포를 조절해 음식을 보기만 해도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6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고,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최 교수는 21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헬스케어이노베이션포럼(HIF 2024)′에서 뇌과학 기반 비만 및 대사질환 극복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가졌다.
최 교수는 먹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갈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인이 비만이 되는 이유 중에 유전자 돌연변이는 100만명 중 1명 꼴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어렸을 때의 환경과 식습관, 쾌락적 중독이 원인”이라며 “과식을 유발하는 중독 회로가 작동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쾌락적으로 과식하는데, 이른바 행복한 돼지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런 비만 상태를 1단계로 분류했다. 2단계 비만은 스트레스 같은 요인에 의해 강박적 과식을 하는 상태다. 최 교수는 “같은 유전자와 뇌를 갖고 있어도 구석기 시대에 태어났다면 살이 안 쪘겠지만, 현대 사회는 배달 음식을 비롯해 손 쉽게 음식을 손에 넣을 방법이 많고 스트레스도 많다 보니 홍수처럼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GLP-1에 기반한 비만 치료제가 인류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 때 식욕을 조절하는 비만 치료제가 자살 같은 심각한 부작용으로 제약업계의 외면을 받은 적이 있는데,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GLP-1 유사체가 사망률을 19% 감소시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GLP-1 유사체 주사를 맞으면 음식을 삼키기 전부터 인지적 배부름이 높아졌다”며 “GLP-1 외에도 GIP(위 억제 펩타이드)나 글루카곤 같은 다른 호르몬을 기반으로 한 치료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3년 정도 대학병원 내분비과에서 당뇨 환자를 봤지만 치료에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그러다가 10년 전 음식 중독 연구에 매진해서 근본 원인을 찾는 게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의사과학자로 진로를 바꿨다.
최 교수는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는 전자약과 디지털 치료제와 병용하면 치료 효과가 더 좋아진다고 밝혔다. 그는 “나쁜 생활 습관은 스마트폰의 디지털 치료제로 적절한 코칭을 받으면 개선할 수 있고, 전자약인 전두엽 자기적 치료법을 사용해도 음식 사진을 봐도 혈류량이 늘어나지 않는 것도 확인했다”며 “개인의 성향에 맞춰 세 가지 방법을 종합해 치료법을 제시하는 게 미래의 헬스케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