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농장에서 가금류, 젖소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1)가 돼지에서 처음 검출됐다.
미국 농무부(USDA)는 서북부 오리건주에 있는 한 농장에서 H5N1에 감염된 돼지를 확인했다고 30일(현지 시각) 밝혔다. 미국에서 H5N1에 감염된 돼지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무부는 이 농장을 즉시 격리하고 여기에 살았던 돼지와 가금류를 모두 살처분했다. 또한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 추가 전파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돼지 두 마리에 대해 바이러스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농장에 사는 돼지들이 가금류와 물, 주거 공간, 장비 등을 공유하면서 H5N1가 퍼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H5N1 바이러스는 주로 조류를 감염시키는데,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가 각각 5형, 1형이다. HA는 바이러스가 사람 호흡기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 역할을 하며, NA는 증식 후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해준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여럿 감염시키며 두 단백질의 형태를 바꾸는 쪽으로 진화한다.
특히 돼지는 호흡기 세포에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수용체와, 인간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수용체를 모두 갖고 있다. 두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모두 감염될 수 있다는 얘기다. 즉, 조류인플루엔자가 돼지 몸속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로 탄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일으킬 바이러스로 인플루엔자를 꼽고 있다. 2009년 팬데믹을 일으켰던 신종플루의 근원도 돼지가 걸린 H1N1 인플루엔자였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이번 사례는 돼지가 야생조류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돼지고기 공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돼지에서 사람에게 전파될 위험도 낮다. 농무부는 “이 농장이 상업적인 농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돼지공기 공급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는 돼지끼리 H5N1 전파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플로리안 크래머(Florian Krammer) 미국 마운트시나이아이칸 의대 교수는 미국 의료전문지 스탯(STAT)에 “한 농장 내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아직 큰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돼지 간 전파가 시작된다면 그 위험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무부가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출현성감염질병지(Emerging Infectious Diseases)’에 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 유행하는 H5N1은 과거 바이러스보다 돼지를 감염시킬 수 있는 능력이 더 뛰어났다. 하지만 다행히 조류로부터 감염된 것일 뿐, 아직 돼지간 전파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참고 자료
Emerging Infectious Diseases(2024), DOI: https://doi.org/10.3201/eid3004.23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