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15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병원 감염관리 네트워크 사무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백신이 가장 효율적인 대상포진 예방법"이라며 "백신 외 대상포진을 예방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허지윤 기자

지난해 75만명이 대상포진에 걸려 병·의원을 찾았다. 대상포진은 잠복하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다시 활동하면서 신경을 따라 줄무늬 모양의 발진, 수포를 발생시키는 질환이다. 생명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엄청난 고통 때문에 환자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대상포진은 50세 이상부터 발병률이 급격히 올라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상포진 환자 중 50대 이상이 66%에 달했다. 면역 노화와 저하자가 대상포진에 더 취약하다 보니, 고령화 추세에 따라 환자도 증가세다.

국내외 의약계 전문가들은 대상포진의 가장 효율적인 예방법은 백신 접종이라고 입을 모은다. 접종 적기는 면역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50대이다. 국내 대표적인 방역 전문가인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 15일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백신이 가장 효율적인 대상포진 예방법이며, 그밖에 대상포진을 예방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 선진국은 일찍이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국가사업으로 도입했다. 정부와 학계는 고령 환자가 대상포진에 걸려 입원해 발생하는 의료비 지출에 비하면 백신 접종으로 예방하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라고 분석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상포진 백신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NIP)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지난달 발표된 내년도 예산안에서 제외된 상황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매우 빠른 국가인 만큼, NIP의 방향도 흐름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생명이 달린 백신뿐 아니라 대상포진과 같이 삶의 질과 관련된 백신도 비용 효과가 있으면 NIP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 학계는 생백신·사백신에 이은 차세대 백신인 유전자재조합 백신을 우선 권고하고 있다. 생백신·사백신은 바이러스로 만들었다면, 유전자재조합 백신은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동물세포에 넣어 만든 특정 단백질(항원)을 인체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2018년 미국 예방접종자문위원회는 장기 예방 효과가 큰 유전자재조합 백신을 약독화 생백신보다 우선 권고했다”며 “비용 효과 측면을 고려했을 때 유전자재조합 백신의 국가필수예방접종 포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 공급된 대상포진 백신은 한국GSK의 ‘싱그릭스’, 한국MSD의 ‘조스타박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스카이조스터’ 등이 있다. 조스타박스는 지난 2006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받은 약독화 생백신이고, 싱그릭스는 2017년 FDA 허가를 받은 유전자재조합 백신이다. 생백신인 스카이조스터는 2017년 9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이 교수는 “백신 접종은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료 재정을 절약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당장 재정 부담을 고려하면 비교적 저렴한 대상포진 생백신을 우선 NIP에 포함하고, 생백신 이상의 비용은 개인이 부담하는 바우처 형태로 유전자재조합 백신 접종을 선택지로 제시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언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대상포진 잠복기. /조선DB

–대상포진 생백신과 차이는

“대부분은 수두에 걸린 적이 있어 수두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는데, 면역세포인 T세포 면역력이 감소하면 대상포진에 걸린다. 생백신은 수두 백신 추가 접종으로는 대상포진 예방이 어려워 수두 백신을 14~16배 정도 농축해 T세포 면역을 아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생백신인 수두 백신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로 만들기 때문에 면역 저하자에게서는 사용할 수 없다. 효과도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이런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유전자재조합 백신이다.

–유전자 재조합 백신인 싱그릭스는 어떤 원리인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단백질(항원) 성분인 당단백질E(glycoprotein E)와 면역증강제 AS01B를 추가해 만든 게 유전자재조합 백신 싱그릭스다. 대상포진의 T세포 면역 자극을 가장 잘하는 당단백질E(glycoprotein E)를 유전자재조합을 통해서 다량의 항원으로 만들고, 그 항원만으로 면역 작용이 어려워 여기에 면역 증강제를 섞어 면역 작용을 극대화했다.”

–예방 효과는 어느 게 더 큰가.

“연구 데이터를 들자면, 생백신 예방 효과는 50~59세에서 69.8%, 60~69세에서 64%, 70대에서 41%, 80대에서는 18%까지 떨어진다. 예방효과 지속 기간도 8년으로, 이후로는 예방 효과가 거의 제로(0)까지 떨어진다. 유전자재조합 백신인 싱그릭스의 경우, 만 50세 이상에서 97.2%의 예방 효과와 접종 후 10년간 89%로 대상포진의 장기 예방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을 반영해 미국 예방접종자문위원회는 유전자 재조합 백신을 약독화 생백신보다 우선으로 권고했다.

전통적인 면역학 관점에서 생백신이 실제 바이러스와 유사한 감염을 일으켜 작용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효과가 훨씬 좋고, 유전자재조합 백신은 일부 항원만으로 만들기 때문에 면역 자극이 약해 생백신보다 효과가 낮을 거라고 이야기됐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술들을 통해 효과적인 항원을 찾았다. 면역을 강력히 자극하는 면역 증강제가 나오면서 생백신보다 유전자재조합 백신 계열에서 훨씬 더 예방 효과가 뛰어난 백신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패러다임도 바뀌었다.”

GSK의 유전자재조합 대상포진 백신 싱그릭스. /로이터

–유전자 재조합 백신만의 다른 이점은 뭔가.

“유전자재조합 백신은 생백신과 다르게 약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위험이 없다. 이 때문에 면역 저하자 중에서도 대상포진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 이제는 인플루엔자(독감), 인유두종바이러스(HPV), A·B형 간염 백신도 유전자재조합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면역 증강제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강한 면역 자극으로 인해 자가면역 질환 위험이 커지거나, 면역 항진(과잉반응)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암 유발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GSK의 면역증강제는 나온 지 20년이 넘었고, 매우 다양한 백신에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리스크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대상포진에 걸린 적이 있거나 생백신을 접종했어도 재접종이 필요한가.

“생백신 접종자와 대상포진에 걸렸던 사람들도 재발 우려가 있는 만큼, 높고 장기적인 예방 효과가 있는 유전자재조합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예방을 위해 유리하다. 국내에서는 생백신 접종자는 접종이 가능하다 정도로 안내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특히 생백신 접종자에게 싱그릭스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유전자재조합 백신의 국가필수예방접종(NIP)이 2025년도 예산안에서 제외됐다.

“백신 접종 사업이 당장 재정 문제를 유발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료 재정을 절약할 수 있다. 국가 재정 문제를 고려해 제안하자면, 비교적 저렴한 대상포진 생백신을 우선 NIP에 포함한 후 바우처 형태로 유전자재조합 백신을 옵션으로 제시하는 방법이 있다. 표준 백신 비용을 지원하고 고면역원성 백신 접종을 원하는 대상은 본인이 추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접종률도 더 올릴 수도 있다. 바우처 제도를 정부 주도로 시행하는 것이 어렵다면, 건강보험공단이 담당하는 것도 방법이다. 장기적으로 예방 접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비용 효과를 건강보험공단이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 문제는 백신 접종 시 본인부담률을 시간에 따라 80%, 50%, 20%로 점차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