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열세줄땅다람쥐 모습./Robert Streiffer

다람쥐가 백내장 환자들의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람쥐가 동면할 때 생기는 눈의 반점에서 단서를 얻어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백내장은 그동안 주로 수술로 치료했는데, 이 연구로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 국립보건연구원(NIH) 연구팀은 열세줄땅다람쥐의 동면을 연구해 수술 없이 백내장을 없앨 수 있는 단백질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임상연구저널(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에 지난 18일 발표했다.

빛이 깨끗한 수정체로 눈에 들어와야 망막에 상이 제대로 맺힌다. 백내장은 안구의 수정체가 혼탁해지면서 빛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해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보이는 질환이다. 선천성 백내장은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후천성 백내장은 노화와 함께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이 백내장 치료의 단서를 찾은 동물은 열세줄땅다람쥐(Ictidomys tridecemlineatus)이다. 열세줄땅다람쥐는 북아메리카의 초원 지대에 널리 서식하는 동물로,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잠을 잔다. 이 다람쥐는 겨울잠에 빠지면 체온이 섭씨 3.9도까지 떨어지는데, 이때 눈에 흐릿한 반점이 생긴다. 눈의 반점은 겨울잠에서 깨 체온이 올라가면 다시 사라진다.

겨울잠 자는 열세줄땅다람쥐의 수정체에서는 크리스탈린(Crystallin) 단백질의 변화가 발견됐다. 크리스탈린은 수정체 속 단백질의 90% 정도를 차지한다. 크리스탈린의 성질이 변하면 수정체가 혼탁해지면서 백내장이 발생하는데, 이 현상이 열세줄땅다람쥐의 겨울잠 기간에도 나타났다. 같은 현상이 집쥐(래트)와 생쥐에서도 발견됐지만, 흐린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열세줄땅다람쥐가 가장 빨랐다.

연구팀은 열세줄땅다람쥐의 수정체 세포를 채취해 단백질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열세줄땅다람쥐의 크리스탈린 단백질에는 RNF114라는 단백질이 붙어있었다. RNF114는 수명이 다하거나 손상된 단백질을 분해하는 유비퀴틴-프로테아좀 시스템(UPS)으로 작동한다. 열세줄땅다람쥐가 겨울잠에서 깨면 RNF114가 작동해 응집됐던 크리스탈린 단백질이 분해되는 방식이다.

RNF114 단백질은 생쥐를 대상으로 한 비임상시험에서 효과를 보였다. 연구팀이 쥐의 수정체에 RNF114를 투여하고 백내장을 일으키자, 실험체의 95% 이상이 13일 이내로 정상이 됐다. 인간과 유전적 구조가 80% 이상 비슷한 열대어류 제브라피쉬는 무려 12시간 만에 백내장이 치료됐다.

이번 연구는 백내장을 수술이 아닌 치료제로 없앨 수 있는 첫발을 내딛는 의미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백내장을 앓고 있는 환자 수는 2022년 기준 약 160만 명으로 최근 5년 사이 18% 늘었다. 백내장 수술은 안압 상승이나 안구 염증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는 만큼 치료제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연구에 참여한 싱차오 센투(Xingchao Shentu) 중국 저장대 수석연구원은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백내장 수술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RNF114 단백질은 백내장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열쇠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 DOI: https://doi.org/10.1172/JCI169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