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헬리코박터균(학명 Helicobacter pylori) 감염으로 인한 위궤양이 치매에 위험하며,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제균치료를 일찍 시작해야 치매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장 건강을 위한 헬리코박터균 치료가 뇌 건강도 지키는 새로운 치료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성모병원은 강동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임현국 여의도성모병원 뇌건강센터 공동 연구진이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 여부에 따른 치매 발병 위험도를 연령별로 평가해 이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고 13일 밝혔다.
헬리코박터균은 소화성 궤양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균으로 위와 십이지장 점막에 서식한다. 국내 성인의 50~60% 이상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돼 있다. 헬리코박터균은 혈관뇌장벽을 통과해 뇌내 신경염증을 유발하고,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인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의 침착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소화성 궤양은 신경세포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고, 장내 세균 종류에 변화를 일으켜 치매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다행히 헬리코박터균은 주로 항생제와 위산 억제제를 복용하는 제균치료로 없앨 수 있다.
연구진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55세~79세 총 4만7628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 여부에 따른 치매 발생 위험도를 연령별로 평가했다. 고혈압, 당뇨병, 허혈성 심질환, 고지혈증 같은 다른 치매 위험인자는 통제했다. 그 결과 소화성 궤양 환자는 5년, 10년 뒤 전반적인 치매 발생 위험이 건강한 사람보다 약 3배가량 큰 것으로 확인됐다. 연령별로 세부 분석한 결과 60대와 70대의 연령 분포에서 특히 알츠하이머병 치매 발생 위험이 커졌다.
연구진은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 위험을 낮춘다는 기존 연구 결과에 주목해, 제균치료 시기와 치매 발생 위험 정도를 평가했다. 위궤양 진단 이후 6개월 이내에 제균 치료를 시작한 조기 치료군과 1년 이후에 제균 치료를 시작한 지연 치료군을 5년, 10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제균 치료를 늦게 시작한 사람은 일찍 시작한 사람에 비해 치매 발생 위험이 2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강동우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소화성 궤양 질환과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가 치매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초기 연구”라며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신경퇴행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음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발효 음식이나 매운 맛을 즐기는 한국의 전통적인 식습관이 위점막을 자극해 헬리코박터균 감염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진단 기술의 발전으로 감염 여부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장 건강은 물론 뇌 건강을 위해 조기 진단과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임현국 교수는 “소화기 질환과 신경퇴행성 질환 간 복잡한 상호작용을 고려할 때, 감염성 위장 질환이 치매 발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볼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다”며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치매 예방과 치료 전략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달 12일 국제 학술지 ‘제로사이언스’에 실렸다.
참고 자료
Gero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007/s11357-024-01284-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