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포트래이 사옥에서 이대승 대표(오른쪽)와 나권중 이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염현아 기자

바이러스, 암, 치매 등 모든 질병은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DNA 속 유전자 정보가 단백질을 만들기 전에 꼭 거치는 RNA(리보핵산) 생성 단계가 결정적이다.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알면 대부분의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RNA가 우리 몸 속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면 된다. 이 때문에 현재 국내외 많은 제약사들이 이 RNA에 주목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만든 미국 화이자와 모더나도 바로 이 RNA를 이용했다.

국내 인공지능(AI) 신약개발 업체인 포트래이는 ‘공간 전사체’ 분석 기술을 활용한다. 공간 전사체는 RNA의 활동 양상을 세포 단위로 보여주는 지도다. DNA는 인체 모든 생명활동을 관장하는 단백질을 만들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 단백질이 필요하면 DNA 중 그에 해당하는 정보가 RNA로 복사된다. RNA는 이 정보로 단백질을 만든다. RNA가 어디에 있다면 그곳에서 단백질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포트래이는 암 치료에 주목하고 있다. 공간 전사체가 있으면 RNA를 통해 몸 어디에서 단백질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 그 단백질이 암과 관련이 있다면 RNA 분포도로 암 세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RNA 지도 역할을 하는 공간 전사체를 통해 약물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목적지도 알 수 있다. 암이나 약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RNA 내비게이션인 셈이어서 암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된다.

포트래이를 창업한 사람은 서울대 출신 네 사람이다. 이들은 2021년 7월, RNA 지도를 ‘그리고’ ‘전달’한다는 의미의 단어인 ‘Portray’와 ‘AI(인공지능)’를 따 ‘포트래이(Portrai)’라는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했다. 이대승 안과 전문의가 대표(CEO)를 맡고, 최홍윤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임형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최고과학책임자(CSO), 나권중 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최고의학책임자(CMO)다. 모두 서울대 의대를 나온 의사들이다.

이대승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이 있어 IT(정보기술) 업계에서도 경험을 쌓기도 했다. 그러던 중 최홍윤, 나권중 교수가 이 대표를 찾아와 공간 전사체 기술을 활용해 신약개발 연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나노신약 개발을 하던 임형준 교수도 합류해 약물 분포와 공간 전사체를 같이 분석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포트래이가 보유한 국내외 암 환자의 공간 전사체 데이터 조각을 이어 붙여 하나의 콜라주 작품을 만들었다./포트래이

포트래이는 공간 전사체를 활용해 항암 신약을 연구개발(R&D)하는 연구기관이나 제약사들에게 약물의 목적지를 찾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우리는 공간 전사체라는 지도에서 암 세포, 즉 항암 치료 약물이 가야 할 목적지를 찾기 위한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현재 국내외 고객사는 10곳이 넘는다”고 말했다.

공간 전사체를 잘 활용하고 분석 정확도를 높이려면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다. 포트래이는 국내와 해외 병원을 통해 암 환자 1000명 이상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그 수가 2000명에 달할 전망이다.

포트래이는 공간 전사체를 통해 항암 치료를 위한 후보물질도 자체 발굴했다. 모든 고형암에서 효능을 보일 것으로 보고, 자체적인 동물·세포실험을 통해 기술이전을 준비할 예정이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포트래이 사옥에서 이대승 대표와 나권중 이사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뭔가.

이: “안과 전문의이긴 하지만 사실 의사라는 정체성은 이제 많이 흐릿해졌다. 오히려 IT가 더 강하다. 2015년 국군수도병원에서 안과장으로 군의관 복무를 하던 시절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아프리카를 돕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NGO(비정부기구)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우간다 사람들이 글을 써서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암호화폐로 보상을 받는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했는데, 2년 동안 총 60명을 지원했더라. 그렇게 지원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은행이나 기업에 취업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IT 기술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구나 깨달았다. 경영을 배우고 싶어서 MBA(경영전문대학원) 학위도 따 보니, 회사는 무조건 돈을 벌어야 되겠더라. 근데 베프(베스트 프렌드)인 나권중 이사가 공간 전사체를 소개해줬을 때 이건 무조건 돈을 벌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나: “평소 하루에 폐암 환자 4명을 수술하고 외래는 40명씩 보고 있는데, 아무리 시간을 쪼개고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일주일에 가능한 수술은 15명이 최대다. 정말 좋은 신약과 치료법을 개발하면 범용적으로 모든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으니, 훨씬 더 가치가 있겠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런데 공간 전사체를 알게 되고 나서, 이 기술을 주변에 동료 선배 교수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성장성이 확실히 있었다. 분명 신약개발에 큰 역할을 할 거라고 본다.”

–4명이 전공 과목이 다 다른데, 역할 분담이 돼 있나.

나: “전공 과목이 다른 게 굉장한 장점이더라. 기본적으로 프로젝트마다 다같이 소통하고 있는데, 세부적으로 역할은 나눠져 있다. 일단 이 대표는 경영 총괄을 맡아, 고객사와의 소통이나 가장 중요한 투자자 미팅 등을 담당하고, 임형준 이사가 동물·세포실험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최홍윤 이사는 생물정보학적인 접근을 맡고, 나는 임상시험을 담당한다. 실험실은 서울대 병원에 구축했다.”

–포트래이의 주력 사업은 뭔가.

이: “항암 신약을 개발하는 기관이나 제약사들이 연구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데이터들이 많다. 물질을 발굴하기 전이든 발굴 후 임상시험 단계든 고객사가 알고 싶어 하는 데이터를 공간 전사체를 활용해 AI 시스템으로 분석해 제공하는 서비스가 사업의 한 축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개발한 약물이 암 세포에 얼마나 가까이 도달하는지, 또는 특정한 기능을 조절하기 위해 세포 근처에 있는 특정 세포만 죽일 수 있는지 등 의뢰 내용이 다양하다. 암종 중에서도 어떤 적응증을 공략해야 할지 고민해서 같은 약물로 5개의 적응증을 분석 비교해 효능 순으로 데이터를 제공한 적도 있다. 현재로선 이 서비스가 매출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 예상 매출은 15억원 정도다.”

–포트래이의 강점은 뭔가.

이: “공간 전사체가 지도 역할을 한다는 것은 몸 속에 들어간 약물이 우리 혈관이나 암 세포 같은 인체 조직에서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등 거리를 알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에는 어디까지나 추정 하에 약물을 투여한 뒤 동물 또는 인체에서 약효 반응이 있는지를 관찰해야 했지만, 이제 데이터 분석으로 미리 알아볼 수 있다. 그만큼 암 세포에 정확히 도달하도록 약물을 설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포트래이에 프로젝트를 의뢰한 고객사들마다 거리 개념을 알게 돼 좋다고 하더라.”

–또 어떤 사업을 하나.

이: “데이터 분석 다음 단계인 치료제 후보물질을 찾는 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최근 자체적으로 후보물질 발굴에 성공해서 현재 전임상 동물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기술이전을 목표로 현재 국내외 기업들과 논의 중이다. 그리고 동물·세포실험을 거쳐 최종 후보물질을 도출해내는 단계까지 도전하려고 한다.”

–공간 전사체를 신약개발에 활용하는 업체가 또 있나.

이: “국내에는 공간 전사체를 연구하는 기관은 있지만, 포트래이처럼 이 기술을 신약에 바로 적용하는 형태의 회사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해외에는 2곳 정도 있는데, 모두 시작한 시기는 포트래이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다만 프랑스 오킨(Owkin)이라는 회사는 수백억원 규모를 투자해 공간 전사체 데이터를 모아 신약개발에 활용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올해 목표는 뭔가.

이: “연내 타깃 물질을 찾는 단계에서 함께 개발할 파트너사를 찾는 게 목표다. 내년에는 포트래이가 직접 끌고 가는 약물이 실제로 생기는 건데, 전임상을 넘어 실제 인체 데이터를 얻는 게 장기적인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