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퍼졌던 치명적인 변이 엠폭스(MPOX·원숭이두창)가 유럽과 아시아까지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웨덴 보건당국은 15일(현지 시각) 스톡홀름에서 치료를 받던 환자가 엠폭스 바이러스 ‘하위 계통(Clade) 1b’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밖에서 변이 엠폭스의 감염 사례가 보고된 것은 처음이다. 16일 파키스탄에서도 첫 감염자가 보고됐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4일 엠폭스에 대해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PHEIC)을 선포했다. 보구머 티탄지 미국 에머리대 의대 교수는 BBC 방송에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는 질병이 국경을 넘어 세계 보건에 상당한 위협을 가하는 ‘특별한 경우’에만 내린다”며 “이번 조치는 WHO가 엠폭스를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드러낸 조치”라고 말했다.
그동안 아프리카에서만 발생하던 감염병이 왜 국제 사회에 경보를 울린 것일까. 국제 보건 전문가들은 이번 엠폭스 확산 사태가 과거와 다른 바이러스에서 시작됐고, 감염 대상도 어린이로 달라졌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치료제와 백신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어린이 감염자 급증 등 새로운 감염 패턴
엠폭스는 사람이 걸리는 천연두와 비슷하지만 증상이 약한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이다. 고열과 함께 두통, 근육통이 나타나고 온몸에 수포가 발생한다.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며 인간 사이에서도 전염이 된다. 해마다 아프리카 서부와 중부 열대 우림의 외딴 지역에서 매년 수천 명이 감염되고 수백 명이 숨지는 것으로 보고된다.
전문가들은 먼저 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특히 어린이 환자가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앞서 2022~2023년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를 불러온 엠폭스 사태 때는 주로 성 접촉으로 확산됐다. 당시 성인 젊은 남성이 주요 감염자이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어린이 감염자가 많다. 현재 15세 미만 어린이는 엠폭스에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분류된다.
WHO에 따르면 엠폭스는 인구 1억명인 콩고민주공화국과 그 주변 국가를 중심으로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감염자 8000명 가운데 40%가 5세 미만 어린이로 나타났다.
엠폭스는 원래 1958년 실험실의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돼 원숭이두창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 숙주 동물은 주로 설치류 같은 작은 동물이다. WHO는 2022년 동성애자 감염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막기 위해 이름을 엠폭스로 변경했다. 우리 정부도 그해 WHO 지침을 따랐다.
전문가들은 또 부룬디와 케냐, 르완다, 우간다 등 이전에는 보고되지 않은 국가에서 엠폭스 감염사례가 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한다. 브라이언 퍼거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사이언스 미디어 센터에 “엠폭스는 어린이처럼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더 심한 증상이 나타난다”며 “현재 에이즈 치료제인 항레트로바이러스제에 대한 접근성조차 열악한 지역에서 감염자가 나와 백신과 약에 대한 접근성이 부족한 점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사망률 높은 변이 엠폭스, 기원 정보 깜깜이
엠폭스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 부족도 보건 전문가들을 긴장하게 하는 요인이다. 엠폭스 바이러스는 하위 유형(Clade) 1형과 2형 등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2022년에 선포된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 때는 비교적 약한 2형 바이러스가 확산했다. 대한의학회지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같은 기간 모든 환자가 2b형으로 나타났다. 유럽과 아시아 일부 국가를 포함해 100여 국으로 퍼졌지만, 백신을 접종하는 방식으로 통제했다.
최근 확산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확산한 1형이다. 특히 감염자 중 다수가 1b형이라는 새 유형의 변종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1b형 바이러스가 앞서 유행한 바이러스보다 전파가 빠르고 독성이 강하며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2형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생존율은 99.9%에 이르지만 1b형은 사망률이 10%에 이른다.
엠폭스 바이러스도 다른 바이러스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하위 계통으로 진화한다. 코로나19를 유발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는 유전물질이 단일 가닥 리보핵산(RNA)이어서 돌연변이가 자주 일어난다. 이와 달리 엠폭스 바이러스는 디옥시리보핵산(DNA) 바이러스로 분류된다. DNA는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감염력이 높거나 독성이 강한 돌연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 2022년 엠폭스가 대량 확산하기까지 3~4년간 많은 돌연변이가 생겨났다는 점에 긴장하고 있다.
영국 피어브라이트 연구소의 수두 바이러스 전문가인 조너스 앨버내즈 박사는 사이언스 미디어 센터에 “1형 바이러스는 특히 어린이와 임산부, 면역력이 약한 환자에게 더 치명적”이라며 “하지만 어디서 기원했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아직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엠폭스 바이러스가 아프리카가 아닌 곳에서 약 20년 동안 발견되지 않고 조용히 순환했을 수도 있다는 몇 가지 징후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트루디 랭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영국 가디언지에 “바이러스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임신 중인 산모에서 아기에게 전염되는 새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며 “매우 위험한 감염일 수 있으며 사망자도 나왔지만, 사망률을 이해하려면 경증 감염자를 포함해서 전체 감염자 수와 감염 정도를 더 잘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 전략 부재, 코로나19 재현 땐 재앙
일각에선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난 백신 수급 불균형이 이번에도 재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엠폭스가 확산 조짐을 보이자 백신을 만들 제조사 모집에 나섰다. 현재 덴마크 생명공학 회사 바버리안 노르딕과 일본 KM바이올로지스, 미국의 이머전트 바이오솔루션스가 엠폭스 백신의 승인을 받았거나 심사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제적인 보건 기구와 단체들이 서둘러 백신 전략을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효과적인 백신이 있기는 하지만,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고 필요한 아프리카 지역에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일종의 병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엠폭스는 코로나19보다 백신과 치료제의 생산량이 적고 환자의 접근성도 떨어진다.
지미 휘트워스 영국 런던 위생 및 열대의대 명예교수는 “아프리카 질병통제예방센터는 현재 아프리카에서 필요한 백신의 양을 1000만 회분으로 추산하고 있다”며 “코로나19 때와 달리 전 세계적인 연대를 통해 백신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전달되고 부유한 국가가 비축하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시 골딩 영국 웰컴 트러스트의 전염병·역학 책임자는 재단 뉴스에서 “전염병은 전 세계적으로 건강과 보건 형평성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질병이 확산되어 국경을 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행동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Science Media Center(2024), https://www.sciencemediacentre.org/expert-reaction-to-news-of-a-case-of-clade-1-mpox-reported-in-sweden/
London School of Hygiene & Tropical Medicine(2024), https://www.lshtm.ac.uk/newsevents/news/2024/expert-comment-who-declares-mpox-outbreak-public-health-emergency
Wellcome Trust(2024), https://wellcome.org/news/wellcome-responds-who-declaring-mpox-public-health-emerg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