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종합병원들이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정년 퇴임한 교수들을 병원으로 다시 부르고 있다. 가용 의료진을 최대한 활용해 인력을 충원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나이나 높은 인건비 문제로 퇴임 교수 재고용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른바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 중 하나인 세브란스병원은 최근 퇴직 또는 정년 퇴임한 교수들을 재고용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허동수 연세대 비상 정책이사회 이사장은 지난달 열린 회의에서 “전공의 부재로 생긴 인력 공백 해결을 위해 인건비를 조정하더라도 유능한 퇴임 교수를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전체 의사 중 전공의가 약 40%를 차지하는 만큼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인력 공백이 큰 상황이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퇴임 교수가 일부 진료·수술을 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부재 병원들, 퇴임 교수에게 SOS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진료 공백이 반년을 넘어서자 대학병원들은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줄이고 있다.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는 병원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세종충남대병원은 4년 만에 적자가 2000억원에 달하면서 경영 위기를 맞았고,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은 인력과 병상을 줄이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미 65세로 정년 퇴임한 교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 가장 공백이 심각한 과목은 기피과로 꼽히는 산부인과와 마취통증학과다.

전남의 한 지역 의료원은 원래 의사가 부족한 데다 전공의 사직까지 겹치면서 정년을 앞둔 교수들이 퇴임을 최대한 미루고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70대 시니어 선생님이 신생아를 받고 있다”며 “산과는 원래 의사가 없어서 충원도 불가능해 정년을 훌쩍 넘긴 분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 의료원에서는 70대 교수가 전신마취를 위해 매일 수술방으로 출근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를 구하려고 1년간 총 20번의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도 병원들의 퇴임한 교수 재고용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지난 3월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분야 진료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니어 의사를 신규 채용하고, 퇴직 예정 의사는 채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국립중앙의료원에 지역·필수의료 분야와 공공의료기관의 시니어 의사 활용을 지원하는 시니어의사 지원센터를 열기도 했다.

◇체력 한계, 높은 인건비…”현실적으로 불가능”

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정년 퇴임한 전국 의대 교수는 1269명에 달한다. 연평균 230명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50~79세 의사 중 현재 활동하지 않는 의사는 4166명으로, 50대 1368명, 60대 1394명, 70대는 1404명이다. 상당한 자원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시니어 퇴임 교수가 병원으로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재고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나이로 인한 체력적 부담과 높은 인건비 때문이다. 빅5 병원 한 관계자는 “교수님들이 퇴임한 후엔 개원이나 학회 일정으로 더 바쁜 것으로 안다”며 “퇴임 교수 재고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도 “지금 가장 심각한 게 당직 부족 문제인데, 어떻게 70대 교수님들에게 콜하겠나”라며 “와주신다면 감사하지만, 지금 병원들마다 자금난으로 허덕여서 퇴임 교수들 페이(임금)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