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5N1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입자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사진(주황색)./CDC, 미국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미국 젖소 농장에서 유행하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인간에 넘어간 사례가 또 나왔다. 이번에는 젖소 농장이 아닌 닭 농장이다. 감염 경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새에 퍼지던 바이러스가 포유류를 감염시킬 형태로 진화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행히 인간 사이 전파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감염 증상도 매우 경미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콜로라도주에 있는 한 대형 산란계 농장에서 직원 6명이 고병원성 H5N1 조류인플루엔자에 전염됐다고 20일(현지 시각) 밝혔다. 당시 감염자들은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닭 180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작업을 했다. 감염자들은 발열과 기침 등 독감 증세를 보였고, 일부는 젖소로부터 전염된 감염자들처럼 결막염도 나타났다.

H5N1는 주로 조류를 감염시키는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로, 표면에 있는 헤마글루티닌(HA)과 뉴라미니디아제(NA)가 각각 5형, 1형이다. HA는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달라붙는 열쇠 역할을 하며, NA는 증식 후 인체 세포를 뚫고 나오게 해준다. 바이러스는 숙주를 여럿 감염시키며 두 단백질의 형태를 바꾸는 쪽으로 진화한다.

한 농장에서 여러 사람이 H5N1에 동시에 감염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가 인간을 잘 감염시키도록 진화했는지, 또는 해당 농장이 바이러스가 확산되기에 좋은 환경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콜로라도주에서 발생한 것도 눈에 띈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발생한 가축 H5N1 감염 사례 중 4분의 1이 콜로라도 주에서 발생했다.

CDC에서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감염된 H5N1 바이러스는 최근 미시간주 젖소 농장에서 유행한 H5N1 바이러스와 유전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어떤 경로로 닭 농장 근로자들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USDA와 콜로라도주는 현재 역학 조사 중이다.

요시히로 카와오카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 교수는 최근 젖소 사이에 퍼진 H5N1 바이러스가 인간 호흡기 세포에도 결합할 수 있게 진화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바이러스가 조류에 이어 소와 인간 등 포유류에도 결합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 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다만 연구진은 H5N1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인간 사이에서 전염이 될 수 있는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카와오카 교수는 미국 의료전문지 스탯(STAT)에 "H5N1에 감염된 인간 사례가 제한적인 것으로보아 아직 공기를 통해 쉽게 퍼지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바이러스가 언제 인체에 적응해 인간 간 전파가 가능해질지 모르므로 바이러스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콜로라도주립 수의사인 매기 볼드윈 박사는 "이전까지는 인간 H5N1 감염은 야생 조류로부터 전염된 것이었지만 최근 젖소와 인간 간 감염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 바이러스가 가금류로까지 퍼질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반면 마이클 오스터홀름 미국 미네소타대 감염병연구·정책센터장은 "젖소와 인간 간 H5N1 감염 사례가 적기 때문에 인간 간 전염을 우려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CDC는 일반인이 H5N1에 걸릴 위험은 여전히 낮다고 강조했다. 적절하게 취급하고 조리한 닭고기, 달걀을 먹는 것 역시 여전히 안전하다고 밝혔다.

이날 CDC는 미시간주에서 발생한 젖소 농장 근로자 H5N1 감염사례에 대해 분석한 결과도 발표했다. 감염 젖소와 접촉했지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H5N1에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무증상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7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