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과학자들이 살아 있는 동물의 장내 세균에서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고 편집하는 데 성공했다. 장에 공생(共生)하는 장내 세균이 건강하면 대장질환은 물론 뇌질환도 막고 노화까지 억제한다. 이번 결과가 인체에 적용되면 장내 세균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 바이오 기업인 엘리고바이오사이언스(Eligo Bioscience) 연구진은 “장내 세균의 유전자를 바꾸는 ‘염기 편집 기술’을 개발해, 실제 살아 있는 쥐에게 성공적으로 적용했다”고 1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유전물질인 DNA는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 등 네 가지 염기로 구성된다. 이 염기들이 배열된 순서에 따라 아미노산들이 연결돼 모든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염기 편집은 DNA 유전자의 특정 염기를 다른 염기로 바꾸는 기술을 말한다.
기존에도 여러 연구진이 장내 세균의 유전자를 바꾸는 연구를 했다. 실험실에서 배양한 세균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은 성공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물의 몸속에 있는 장내 세균을 바꾸는 일은 번번이 실패했다. 장내 세균 DNA의 이중사슬을 끊지 않고 염기만 바꾸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엘리고바이오사이언스 연구진은 세균에 감염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장내 세균의 특정 염기를 바꾸도록 설계한 효소 복합체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를 박테리오파지에 넣는 것이다. 박테리오파지는 장내 세균에 감염되면서 유전자 가위를 전달한다. 쥐의 유전자는 건드리지 않고 장내 세균에게만 침투해 유전자를 바꾸는 원리다.
연구진은 대장균이 분비하는 효소인 ‘베타-락타메이스’를 만드는 유전자에서 염기 A를 G로 바꾸는 유전자 가위를 만들었다. 베타-락타메이스는 다양한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일으키는 효소다.
유전자 가위를 박테리오파지에 넣어 살아 있는 쥐에게 투여했다. 그 결과 투여한 지 약 8시간 만에 쥐에 있는 대장균의 93%에서 유전자의 염기가 바뀌었다. 대장균은 최소 42일 동안 유전자가 편집된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염기가 편집된 DNA가 다시 복제되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편집된 유전자가 쥐의 몸속에 퍼지는 일도 막았다. 질병 치료를 위해 단기간만 유전자를 편집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오는 것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연구진은 신경퇴행성질환, 자가면역질환과 관련된 대장균의 유전자를 수정하는 유전자 가위를 만들었다. 박테리오파지에 넣어 쥐에게 투여한 결과, 약 3주 후에 대장균의 약 70%에서 유전자가 편집됐다. 이외에도 연구진은 폐렴 감염을 일으키는 대장균과 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가위도 만들어 살아 있는 쥐에게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살아 있는 동물에서 장내 세균의 유전자만 편집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장내 세균의 유전자 기능을 알면 이를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치료법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장내 세균의 유전자를 편집하면 실제로 쥐의 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지 추가 연구를 할 계획이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체이스 바이젤(Chase Beisel) 독일 헬름홀츠RNA기반감염연구소 화학엔지니어는 이날 네이처에 “이번 연구는 장내 세균을 편집해 질병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편집한 유전자가 체내에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681-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