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구진이 생쥐 실험에서 코에 약물을 뿌려 치매를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치매 치료제들은 뇌까지 도달하기 어려워 효과가 제한적이었는데, 코를 통하면 뇌에 직접 약물을 주입할 수 있어 치매 치료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텍사스대 의대 연구진은 최근 코를 통해 뇌까지 전달되는 새로운 타우 단백질 면역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지난 3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실렸다.
알츠하이머 치매나 파킨슨병의 일종인 진행성 핵상 마비와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은 뇌에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이번 연구에서 공략한 타우 단백질은 신경세포의 기다란 형태를 유지해 이음새 역할을 하는데, 세포에서 떨어져 나오면 문제를 일으킨다. 이음새가 떨어져 나가니 신경세포의 형태가 붕괴하고, 뭉친 타우 덩어리는 독성을 띠고 신경세포를 떠돌아다니며 세포를 손상시킨다.
그동안 개발된 치매 치료제들은 뇌에 쌓인 타우 단백질을 제거하거나 뭉치지 못하게 해 병세가 악화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혁신적인 치매 치료제라도 정작 뇌에 도달하기 힘들다는 공통적인 문제점이 있다. 바로 뇌에서 이물질의 침입을 막는 혈뇌장벽(血腦障壁·Blood Brain Barrier)이다.
혈뇌장벽은 뇌 혈관을 감싸는 세포층으로, 뇌 기능에 필수적인 산소나 영양분만 받아들이고 나머지 분자들은 차단한다. 외부 물질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든든한 파수꾼의 역할을 하지만, 약물이 뇌에 도달하는 것을 막는 방해꾼이 된다. 많은 치매 신약이 혈뇌장벽을 넘지 못해 당초 기대보다 제한적인 효과를 보였다.
텍사스대 연구진은 약물이 직접 뇌에 들어가면 타우 단백질 응집체를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코에서 뇌로 이어지는 비강(鼻腔)에 약물 스프레이를 뿌려 혈뇌장벽을 넘어서는 방법을 고안했다. 마약 중독자들이 마약을 빨리 흡수하기 위해 코로 마약을 흡입하는 방식에서 단초를 얻은 방식이다. 비강 점막의 신경을 통해서 뇌 혈관 장벽을 우회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우회 전달 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타우 단백질 응집체를 제거할 ‘독성 타우 형태 특이적 단일클론항체-2(TTCM-2)’ 물질을 미셀에 실었다. 미셀은 비누 같은 계면활성제가 물속에서 기름을 품고 있는 상태이다. 미셀에 실린 TTCM2는 타우 단백질이 쌓인 생쥐의 뇌에 들어가 비정상적인 타우 단백질 응집체를 찾아 제거한다. 제거 촉진제로는 TRIM21이라는 단백질 분해 효소를 사용했다. 이 같은 TTCM2을 비강으로 투여하자 혈뇌장벽을 효과적으로 우회해 생쥐의 뇌에 도달할 수 있었다.
논문 제1 저자이자 텍사스대 의대 신경과 연구원인 사가르 가이콰드(Sagar Gaikwad)는 “단 한 번의 약물 투여만으로도 늙은 생쥐는 단기 기억 상실이 완화됐고, 치료 후에도 기억 형성·인지 기능과 관련된 신경 세포 지표가 개선됐다”고 밝혔다. 반면 치매 증상이 없는 생쥐의 두뇌 조직에서는 약물의 활동이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치료제의 제형과 용량을 최적화하고 다양한 동물 모델에서 장기적인 안전성과 효능을 평가할 계획이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대상으로 TTCM2 비강 스프레이 임상시험을 진행해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타우 관련 장애 질환의 치료법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translmed.adj5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