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평균 수명은 남성보다 5% 정도 길다. 다른 척추동물도 그렇다. 지금까지 왜 성별에 따라 수명이 다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 과학자들이 동물실험으로 생식 능력이 암수 간 수명 차이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같은 남성이라도 거세한 남성이 더 오래 살았다는 기록이 동물실험으로 입증된 것이다.
오사카대 연구진은 작은 물고기인 킬리피시(killifish)에서 생식세포를 만들지 못하게 유전자를 차단하면 암수의 수명 차이가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어드밴시스’에 발표됐다.
몸길이가 2~5㎝인 킬리피시는 아프리카 호수에 산다. 특이하게 가뭄이 닥치면 배아 상태에서 발달을 멈추고 수명보다 4배나 길게 잠을 잔다. 연구진인 킬리피시가 인간과 노화과정이 비슷한 척추동물이어서 실험 대상으로 선택했다.
과학자들은 남녀의 수명이 다른 것은 성호르몬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했다. 앞서 2012년 국내 연구진은 16~19세기 조선에서 살았던 환관(내시)이 동시대 양반 남성보다 14~19년 더 오래 살았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일부 내시는 100세를 넘어 장수했다. 당시 인하대, 고려대 연구진은 거세로 남성호르몬 분비가 억제돼 내시가 더 오래 살았다고 추정했다.
이시타니 토루(Tohru Ishitani) 오사카대 미생물질환연구소 교수는 국내 연구진의 가설을 킬리피시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연구진은 킬리피시 암수에게 생식세포를 만드는 유전자와 결합해 기능을 차단하는 안티센스 리보핵산(RNA)을 투여했다. 생식세포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러자 수컷은 평균보다 오래 살고 암컷은 평균보다 일찍 죽어 본질적으로 수명 격차가 줄어들었다.
킬리피시의 생식 능력을 차단하자 암수에서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난자를 만들지 못하는 암컷은 몸집은 커졌지만,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줄면서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했다. 이로 인해 수명이 짧아졌다. 몸집이 커진 이유는 성장호르몬인 IGF-1(인슐린 유사 성장팩터-1)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IGF-1은 성장을 촉진하지만, 과다하면 암을 유발하거나 수명을 줄인다.
반면 정자를 만들지 못하는 수컷은 간에서 비타민D를 더 많이 만들어냈다. 비타민D는 뼈와 근육, 피부를 튼튼하게 만든다. 연구진은 비타민D가 몸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와 결국 수명을 늘렸다고 분석했다. 비타민D가 척추동물의 수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킬리피시에게 비타민D를 투여했더니 수컷은 21%, 암컷은 7% 정도 수명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시타니 교수는 “생식세포 생산을 차단하면 암수 모두 수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실제로는 수컷만 늘어나고 암컷은 줄었다”며 “예상치 못한 결과지만 이 연구 결과를 통해 성별에 따른 수명 차이를 밝힐 실마리를 찾았다”고 말했다.
생식능력이 남성과 여성의 수명에 서로 반대되는 영향을 미친다는 이번 연구 결과는 생식, 노화, 수명 사이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 또한 연구진은 비타민D가 건강한 수명을 늘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4),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i162
Current Biology(2012), DOI: https://doi.org/10.1016/j.cub.2012.06.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