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제왕절개 분만에서 사용하는 국소마취제인 페인버스터를 무통주사와 같이 쓸 수 없도록 지침을 내린 것이 알려지면서 산모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7월 1일부터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같이 사용할 수 없다고 행정 예고를 하고, 페인버스터의 건강보험 급여 환자 부담을 현행 80%에서 90%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마약성 진통제인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같이 쓰는 것과 무통주사만 사용하는 것이 통증을 줄이는 데 차이가 크지 않고, 페인버스터가 산모 건강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제왕절개는 산모의 복부를 10㎝가량 절개해서 태아를 분만하는 수술이다. 수술 마취가 풀리고 고통이 극심하면 페인버스터로 통증을 잡는다. 페인버스터 시술은 수술 부위에 관(카테터)을 삽입한 후 사흘가량 리도카인 같은 마취제를 넣는 방식이다. 페인버스터 시술은 지난 2010년 신의료기술로 지정됐고, 2016년 건강보험 선별급여로 등재돼 쓰였다.
정부는 지난해 8월 2차 건강보험 적합성 평가에서 페인버스터를 무통주사와 같이 쓰는 것은 ‘권고하지 않는다’고 결론냈다. 복지부는 대한마취통증의학회를 포함해 의료계에서 두 마취제를 병행투약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소 마취제를 사흘 이상 장기 투여하면, 전신 독성 위험이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동안 안전성 문제없이 쓰인 페인버스터를 정부가 돌연 금지한다고 밝히면서 진료 현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인터넷 육아카페에서는 이번 결정이 출산의 고통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출산율을 올려야 한다면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처사라는 것이다. 한국의 제왕절개 분만율은 2021년 기준 1000명당 537.7명에 이른다. 산모 2명 중 1명은 제왕절개로 출산하는 만큼 마취제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뜻이다.
이번 정책은 건보재정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페인버스터 시술비는 16만~51만원 정도로, 이 중 현행 건보 부담은 20%(3만~10만원)정도다. 환자 부담을 80%에서 90%로 늘린다고 절약되는 건보 재정은 건당 1만 5000원에서 5만원이다.
정부는 논란이 커지자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같이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물러섰다. 이강섭 복지부 지역의료정책과장은 “의료 현장에서 페인버스터에 대한 전신독성 우려와 고통 경감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간과할 수 없었다”면서도 “현장 의견을 반영해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같이 쓸 수 있도록 예고안을 바꿀 방침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