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이나 지적 장애를 가진 환자 25만여 명을 조사한 결과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위험이 다른 사람보다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파킨슨병과 연관된 유전자 돌연변이가 자폐증과도 관련 있다는 연구 내용이 나온 데 이어 실제 환자에게서도 연관 관계를 확인한 것이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는 28일(현지 시각) 그레고리 월리스(Gregory Wallace) 미국 조지 워싱턴대 교수 연구진이 지난 16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자폐증연구학회에서 자폐증, 지적 장애와 파킨슨증 사이의 관계를 밝힌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파킨슨병은 근육의 무의식적인 운동을 담당하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손발이 떨리고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파킨슨증은 파킨슨병은 아니지만 뇌 질환이나 뇌 손상 또는 특정 약물, 독소로 인해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느린 운동이나 떨림과 같은 증상이 포함된다.
자폐증은 사람들이 타인과 교류하거나 의사소통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뇌 장애다. 1940년대에 처음 개념이 제시됐지만, 1970년대까지 진단 기준이 계속 바뀌면서 자폐증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는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자폐증을 가진 성인이 노화하면서 나타나는 건강 문제 역시 추적이 어려웠다.
200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연구진은 파킨슨병과 관련 있는 PARK2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자폐증과도 연관된 것을 확인했다. 이후 2015년 조셉 피븐(Joseph Piven)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자폐증을 가진 성인 37명을 조사한 결과 12명이 파킨슨증을 앓고 있었다고 밝혔다. 일반 인구에 비해 발병률이 크게 높은 것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표본 크기가 작아 추가 연구가 필요했다.
월리스 교수 연구진은 미국 내 45세 이상 인구 중 자폐증이나 지적 장애를 가진 24만7539명의 3년 치 의료 기록을 검토했다. 이 중 2만3686명은 자폐증을 앓고 있었고, 22만3853명은 지적 장애, 그리고 1만3302명은 자폐증과 지적 장애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연구 결과, 자폐증만 앓는 사람은 5.98%가 파킨슨증 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적 장애만 가진 경우는 6.01%, 두 가지를 모두 앓는 사람 중에서는 7.31%의 비율로 파킨슨증을 보였다. 특히 파킨슨증 진단을 받은 사람은 모두 55세 이상이었다. 같은 연령대에서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비율이 0.11~1.85%라는 것을 고려하면 자폐증, 지적 장애를 가진 표본에서 훨씬 진단율이 높았다.
월리스 교수는 “자폐증과 파킨슨증 사이의 연관 관계를 본 최대 규모의 연구로, 자폐증을 앓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며 “많은 자폐인이 어릴 때부터 운동 기능에 문제를 겪는데, 그 원인이 파킨슨증인지, 자폐증인지, 전반적인 신경 퇴행성 과정의 일부인지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 결과에 대한 동료 평가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자폐증이나 지적 장애를 앓는 사람이 파킨슨증을 더 일찍 겪는지 확인하기 위해 발병 연령을 조사해야 한다”며 “오랜 기간 환자를 추적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4-01572-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