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장과 닮은 조직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장상피화생(腸上皮化生)이다. 상피 조직이 이렇게 변성(화생)되면 위암이 생기기 쉽다. 국내 의료기기 업체가 내시경 검사 영상만으로 장상피화생을 진단하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장수연 프리베노틱스 대표는 최근 조선비즈와 만나 “이달부터 장상피화생과 위암 고위험 질환을 진단 보조하는 AI 소프트웨어인 베노틱스를 은성의료재단의 좋은문화병원이 도입했다”며 “장상피화생은 제때 진단하고 관리하면 위암 발병 위험을 낮추고, 의료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문화병원은 프리베노 소프트웨어도 도입했다. 환자 맞춤형 헬스케어 보고서·시스템을 통해 암 예방을 보조·관리하는 도구다. 장 대표는 “의료기관들이 AI기술을 접목한 의료기기를 활용하면 환자 맞춤형 예방 의학을 실현할 수 있다”며 “최근 부각된 지역 의료 공백과 필수 의료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은성의료재단은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 11개 대형 병원 네트워크를 두고 있다.
장수연 대표는 다국적 제약사인 사노피에서 사업 개발과 효율화 부서 상무를 지낸 뒤 LG전자 출신 산업 영상 AI전문가 이준우 박사와 함께 2021년 프리베노틱스를 창업했다. 장 대표는 “암을 진단하는 도구가 많이 나와 있음에도 암을 놓치는 문제를 AI 기술로 해결해보고자 회사를 창업했다”며 “사명도 진단(diagnostics)을 보조해 암 예방(prevention)을 돕겠다는 비전을 담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위암은 세계 발병률 5위와 사망률 4위를 차지한다. 특히 지속적인 염증 반응으로 인해 위점막 조직이 파괴되고 장점막처럼 변형되는 장상피화생 환자는 위암 발병 위험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내시경만으로는 장상피화생 진단이 어려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장 대표는 “내시경 검사는 의료진이 육안으로 보이는 부분에 한해 소견을 내리다 보니, 진단 정확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며 “제대로 검사를 하려면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데 출혈 위험과 검사 시간 지연 등의 이유로 진단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프리베노틱스는 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위암과 위암 고위험군을 실시간으로 진단할 수 있는 AI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인 베노틱스와 브리베노를 개발해, 지난 1월과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승인을 획득했다. 회사는 AI를 개발하기 위해 장상피화생으로 진단 받은 사람들의 위내시경 영상과 조직 검사 결과를 학습시켰다.
AI는 내시경 영상과 조직 검사 사이의 연관 관계를 스스로 터득하고 나중에는 내시경 영상 판독만으로 장상피화생을 잡아냈다. 장 대표는 “장상피화생의 육안 진단 정확도는 50%대인데, 베노틱스의 장상피화생 진단 정확도는 85~90% 수준”이라고 말했다.
식약처 의료기기 승인을 받으면서 베노틱스 AI의 국내외 출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프리베노틱스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주관하는 AI클리닉 사업 대상 기업으로 선정돼 본격적인 제품 시판 이전에 좋은문화병원과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구자성 은성의료재단 부이사장(좋은문화병원 부원장)은 “재단 산하 병원들이 다양한 AI 소프트웨어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스마트 병원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환자와 검진 고객에게는 정밀한 진단과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진과 직원에게는 획기적으로 효율적인 업무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제품을 고도화하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다각도로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프리베노틱스는 현재 IBK기업은행이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IBK창공 실리콘밸리에 선정돼 미국과 유럽에서 공동 연구와 사업 개발을 논의하고 있다. 카카오벤처스와 미국에 본사를 둔 벤처캐피탈(VC)인 500 글로벌도 이 회사에 투자했다.
프리베노틱스는 최근 미국 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가 중소벤처기업부와 함께 진행하는 ‘엔업(N-UP)’ 참여 기업으로도 선정됐다. 엔업은 창업 기업의 성장과 해외 시장 진출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프로베노틱스는 엔비디아의 지원을 통해 AI 의료기기를 글로벌 시장용으로 고도화하고 기능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위한 절차도 밟고 있고, 진단 영역도 확장 중”이라며 “최고 수준의 진단과 상담, 경과 예측(예후) 관리가 가능한 의료 AI 소프트웨어를 널리 보급해 위암 예방 적기를 놓치지 않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