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30개월이 된 예준이는 앞을 보지 못 한다. 특수 제작된 안경을 써야 간신히 형체를 구분할 수 있는 정도다. 선천성 안질환인 ‘가족삼출유리체망막병증(FEVR)’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탓에 또래보다 발달도 늦어서 일주일에 세 차례 재활센터를 가야 한다. 앞이 안 보이는 대신 말이 빨랐던 예준이는 이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낼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예준이 아빠, 이주혁씨는 아이를 안고 달랠 뿐이다.

지난 17일 세종시청에서 만난 이주혁씨는 예준이를 낳자마자 실시한 신생아 검진 항목에 ‘안저검사’만 있었어도 예준이의 시력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예준이가 태어났을 때 분만병원에서 이씨에게 준 신생아 검진 항목에는 선천성 망막질환을 확인할 수 있는 ‘안저검사’가 없었다. 이씨는 분만병원이 준 모든 검진 항목에 승낙 체크를 했다고 했다.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돈이 아깝지 않았다. 15만원이 들어가는 영양제 주사까지도 모두 체크했다. 하지만 같은 비용이면 할 수 있는 안저검사는 검진 항목에 아예 없었고, 이씨는 예준이의 병을 모른 채 한 달을 보냈다.

이주혁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 대표와 30개월 된 아들 예준군의 모습. 이 대표는 신생아 안저검사만 했어도 아들의 시력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을 떨치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은 다른 아이들이 선천성 망막질환을 조기에 찾아낼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를 설득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이주혁씨

이씨가 예준이의 눈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안 건 생후 80일이 됐을 때다. 그 전부터 아이의 눈동자가 뭔가 이상하다는 건 알았지만, 영아의 눈 검사를 해준다는 병원이 없었다. 이씨는 “집 근처의 충남대병원은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고, 청주와 대전의 모든 안과병원에 다 전화했지만 영아는 검사를 안 한다는 대답뿐이었다”며 “지인을 통해 겨우 전주의 한 안과에서 진찰을 받았고, 곧바로 문제가 심각하니 서울대병원 김정훈 교수를 찾아가라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영아의 선천성 망막질환(IRD)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거의 유일한 소아안과 의사다. 그렇게 예준이는 생후 80일에야 제대로 된 진찰을 받았고, FEVR이라는 처음 듣는 병명을 알았다. 병의 진행 상황이 빨랐던 예준이는 이미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이씨는 “태어나자마자 안저검사를 받았으면 망막이 분리되기 전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을 수도 있었지만, 김정훈 교수님을 만났을 땐 이미 망막이 박리된 후여서 손 쓸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의 병이 내게서 유전이 된 거라 더욱 자책감이 크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지금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게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힘을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선천성 망막질환으로 매년 수천명 실명

이씨는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환우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 소아희소난치안과질환의 실태를 알리고, 적절한 치료와 지원의 필요성을 전하기 위해서다. 이씨가 환우회를 만들기 전에는 선천성 안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아이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창구도 없었다.

국내 선천성 망막질환 환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김정훈 교수와 환우회는 대략 매년 환자가 2000~3000명 정도 발생한다고 본다. 통계청이 매년 집계하는 장애유형별 등록장애인수에서 시각 장애인으로 등록하는 0세에서 19세까지 환자를 선천성 망막질환 환자로 보는 것이다. 작년 기준으로는 2332명에 달했다. 이주혁 대표는 “이 나이대에 시각 장애인으로 등록되는 건 사고나 후천적인 질병보다는 선천적인 요인이 대부분”이라며 “많은 부모가 아이의 병을 어떻게든 치료하려고 장애인 등록을 미루다가 10대에 등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선천성 망막질환으로 시력을 잃는 아이들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김정훈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미숙아 출생률이 높아지면서 망막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도 많아지고 있다”며 “‘노우 더 글로우(KNOW THE GLOW)’라는 글로벌 NGO(비정부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60초에 한 명씩 아이들이 시력을 잃고 있고, 각국 정부가 예방 노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2050년까지 실명률이 3배로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비정구기구(NGO)인 '노우 더 글로우(KNOW THE GLOW)'는 전 세계에서 60초마다 한 명씩 아이들이 시력을 잃고 있다며 선천성 망막질환에 대한 각국 정부의 예방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KNOW THE GLOW

이 대표와 김 교수는 신생아 안저검사를 정부가 책임지는 게 아이들의 시력을 지키는 데 작지만 큰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안저검사를 통해 선천성 망막질환을 확인해도 시력을 지킬 수 있는 확률은 1% 정도지만 한 아이라도 지킬 수 있다면 투자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조기에 병을 발견하면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교수는 최근 태어나자마자 안저검사를 진행해 망막질환을 찾아낸 아이는 양쪽 눈에 각각 2300회, 1800회의 레이저 치료를 진행해 망막박리를 막았다고 했다. 아이는 정상적인 시력을 지킬 수 있었다. 이처럼 신생아 안저검사의 효용은 두 말이 필요없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무관심하기만 하다. 환우회가 보건복지부에 신생아 안저검사에 대한 국가 지원을 요청했을 때, 복지부는 이렇게 답을 보냈다.

복지부의 답은 신생아 눈 검사는 부모와 병원이 알아서 할 일이지 국가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복지부는 관련 예산이나 사업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신생아 안저검사를 국가 검진에 포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신 복지부는 안저검사를 제외하면 신생아 장애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미숙아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통해 신생아의 장애발생을 예방하고, 건강한 성장발달을 지원하고 있다”며 “작년 7월 난임·다둥이 맞춤형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고위험 임산부나 미숙아에 대한 의료비 지원의 소득기준도 폐지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보건복지부의 답에 실망하고, 이제는 지자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세종시를 방문한 것도 최민호 세종시장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세종시는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이 1.12명으로 전국 특별시, 광역시, 도 단위의 지자체 중에 유일하게 ‘1명’을 넘은 곳이다. 젊고 출산율이 높은 도시인 만큼 신생아 안저검사에 대한 수요도 높고, 그만큼 지자체 차원에서 안저검사 확대에 적극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세종시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우리 아이도 세종시에서 태어났는데 분만병원은 이런 검사 항목이 있다는 것도 모르더라”며 “신생아 안저검사 판독사업이 있었다면 우리 아아이들이 적시에 치료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시범사업을 해보자고 하면 모두가 속 시원하겠지만, 검토해야 할 것이 많다”며 “이런 사업은 국비 100% 지원으로 하는 게 원칙”이라고 답했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간담회가 끝난 뒤에 이 대표는 “그래도 지자체장과 간담회까지 열게 된 건 큰 진전”이라며 “이제 막 한 걸음을 내딛었다”고 말했다.

작년 12월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 개발 현황 설명회에 환자를 아이로 둔 부모들이 참석해 김정훈 교수의 설명을 듣고 있다./이종현 기자

얼마나 많은 돈이 들길래 정부와 지자체가 신생아 안저검사를 책임지는 걸 주저하는 걸까. 지난해 전국 출생아수는 23만명 정도다. 현재 신생아 안저검사를 한 차례 받는 데 들어가는 돈은 15만원 정도다. 단순 계산하면 345억원이다. 매년 2300명의 아이들이 선천성 망막질환으로 시력을 잃고 있고 그 중 1%가 조기 검진으로 시력을 지킬 수 있다면, 1년에 345억원이면 23명의 아이들이 앞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23명 외에도 많은 아이가 병의 진행을 늦춘 덕분에 시력을 완전히 잃기 전에 엄마와 아빠,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2800명이 출생한 세종시 입장에서는 단 돈 4억2000만원이면 가능한 사업이다. 하지만 복지부도 세종시도 다른 모든 지자체도 ‘검토할 게 많다’는 말뿐이다.

◇국가 검진되면 검사 비용 3분의 1 가능

신봉식 대한분만병원협회장은 17만5000원이 들어가는 신생아 대사이상검사를 국가에서 책임지고 있는데 그보다 적은 비용이 드는 안저검사를 하지 않은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협회장은 “아이를 출산하면 모든 산모가 제일 먼저 궁금해하는 게 이 아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라며 “3월까지 추세로 보면 올해는 출생아수가 20만명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 저출산 정책으로 아이를 낳으면 이런저런 지원을 정부가 해준다고 하는데 태어난 아이의 기본적인 눈 건강도 국가가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김진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국장도 “저출산 대책을 더 많이 낳게 하는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고 잘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치명적이지만 치료제가 있어서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한 희소질환의 경우에는 신생아 선별검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협회장과 김 교수는 일단 국가에서 신생아 안저검사를 책임지기 시작하면 검진 비용도 15만원에서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안저검사 장비는 해외에서 수입한 고가의 장비를 이용한다. 국내 기업들도 기술력은 충분하지만 국내 신생아 안저검사 수요가 워낙 적어서 장비를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 협회장은 “전국에 400개 정도 분만병원이 있는데 안저검사가 가능한 장비를 갖춘 곳은 30개에 불과하고, 이동식 장비를 쓰는 곳까지 합해도 75개에 그친다”며 “안저검사를 국가에서 책임지면 그만큼 수요가 생기고 국내 기업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힘을 합쳐 곧바로 장비 국산화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관련 의료기기 국산화 가능 여부를 검토했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황이다. 신 협회장은 “장비만 국산화하면 신생아 안저검사 비용을 5만원으로 낮출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전국 모든 신생아를 검사하는데 연 100억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주혁 소아희귀난치안과질환협회(환우회) 대표가 지난 17일 세종시청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며 신생아 안저검사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세종=이종현 기자

신생아 안저검사에 대한 국가 지원이 이뤄지더라도 이주혁 대표는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예준이는 이미 시력을 잃었고, 유전자 치료제가 언제쯤 나올 지 기약도 없다. 그런데도 왜 이 대표는 회사에 휴가를 내면서까지 환우회 활동에 전념하는 걸까. 이 대표는 “어른의 역할”이라고 답했다.

그는 “누군가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시력과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데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 직무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환우회 활동을 하면서 아픈 아이들을 너무 많이 보고 그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 문제를 외면하면 아이들에게 희망이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