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지난 7일(현지 시각)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는 먹는 비만 치료제 ‘아미크레틴(amycretin)’의 임상 1상 시험이 성공했다고 밝혔다. 회사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아미크레틴을 복용하고 3개월(12주) 만에 체중이 13.1% 줄었다. 같은 회사의 비만 치료 주사제 ‘위고비(Wegovy)’가 같은 기간 6% 체중 감소 효과를 보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위고비는 202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제 고생스럽게 운동하고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간단하게 약으로 살을 뺄 수 있을까. 국내 대표적인 비만 연구자인 최형진(47) 서울대 의대 교수는 “비만 치료제가 효능이 좋기는 하나 평생 복용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비만이 음식 중독에서 비롯되므로 뇌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사람마다 음식 중독 형태가 다른 만큼 뇌 연구가 맞춤형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지난 16일 서울대가 주최한 ‘2024 세계 뇌 주간’ 행사에서 ‘욕망, 쾌락, 중독: 식욕과 음식 중독은 어떻게 우리를 살찌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세계 뇌주간 행사는 일반인들에게 뇌과학 연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992년부터 매년 3월 셋째 열린다. 강연에 앞서 서울대 의대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 교수는 “비만 치료제가 어떻게 살을 빼는지 원리도 밝혀지지 않아 비만 극복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비만은 마약, 도박처럼 뇌의 중독 현상”
–세계 뇌주간 강연에서 비만을 음식 중독이라 정의했다. 왜 그런가.
“비만은 결국 욕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 맛없는 것도 먹어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난 몇십년 사이 국내에서도 즐거움을 위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욕망 산업이다. 마약 중독이나 도박, 인터넷 중독처럼 비만도 음식 중독에서 나온다.”
–인간의 뇌는 구석기 시대나 지금이나 똑같지 않나. 그런데 왜 음식 중독에 빠지나.
“뇌에 새로운 진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같은 뇌인데 최근에는 어렸을 때부터 중독적인 상황에 노출됐다. 이를테면 뭔가 잘했을 때 어른들이 사탕이나 초콜릿, 케이크를 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거나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케이크나 자장면을 먹겠지’ 기대하는 식으로 중독이 된다.”
–그렇다면 음식 중독은 현대인이라면 보편적으로 겪는다고 볼 수 있겠다.
“거의 다 있다. 아주 심한 사람과 덜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사실 어렸을 때 부모가 어떻게 했는지가 95%를 결정하는 것 같다. 나머지는 학교나 다른 곳에서 결정한다. 부모가 칭찬만 하고 보상으로 과자를 주지 않으면 음식 중독에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쁜 날 다 같이 자장면 먹거나 하면 어릴 때부터 도박장을 다니는 것과 비슷하게 중독된다.”
–음식 중독을 해결할 방안은 없을까.
“사회가 나서야 한다. 담배가 좋은 예이다. 그동안 담배의 해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흡연자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음식 중독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애들 그냥 과자 사주거나 찬장에 채워 놓으면 다 해결되는데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하는 분들도 많다.”
◇”비만 치료제 효과 좋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아냐”
–위고비나 작년 FDA 승인을 받은 미국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Zepbound) 같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계열 비만 치료제가 제약업계를 흔들고 있다.
“GLP-1 계열은 아주 좋은 약이다. 그전에 나온 약은 식욕을 억제하지만 뇌에 없는 물질이어서 가슴 두근거림이나 우울증 같은 부작용이 많았다. 반면 위고비나 젭바운드는 원래 인체에서 인슐린 분비를 조절하는 호르몬인 GLP-1을 모방했다. 이 물질은 밥 먹을 때마다 한 번씩 나와서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약은 그 양을 좀 높인 것이다. 배부르다는 느낌 말고는 다른 부작용은 없다.”
–그렇다면 이제 비만은 약으로 다 해결할 수 있나.
“일단 효과는 좋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너무 비싸다. 아직 주사제밖에 없어 불편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결핵약처럼 치료가 끝나면 약을 중단하지 못하고 평생 써야 한다는 점이다. 위고비는 체중 감량 효과가 좋지만, 투약을 중단하면 바로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약을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말인가.
“완전 노예가 되는 것이다. 제약회사는 이런 약을 좋아한다. 당뇨약이나 고혈압약이 그렇다. 약 하나 가격은 얼마 되지 않아도 시장이 큰 것은 전체 인구의 10%, 20%가 늘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만 치료제의 작용 원리는 아직 모른다고 한다.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판매되고 나서 나중에 원리가 밝혀진 것과 같지 않나.
“정확하다. 위고비와 같은 GLP-1 유사체 계열 치료제는 2005년 당뇨병 약으로 처음 승인됐다. 내가 내과 전공의로 있을 때라 잘 안다. 당시 부작용이 자꾸 보고됐다. 약을 투여하면 체중이 줄었다. 간 독성이나 면역 독성처럼 위험한 부작용도 아니어서 회사가 비만 치료제로 개발했다. 비아그라가 처음에는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다가 음경 발기라는 부작용이 나오자 발기부전 치료제로 경로를 바꾼 것과 같다. 비아그라의 작용 원리도 시판 후에 밝혀졌다. 위고비의 작용 원리도 아직 모른다.”
–위고비 같은 GLP-1 유사체 치료제의 원리를 밝히는 연구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튀김 요리를 하다 보면 먹지도 않았는데 배부른 느낌이 든다. 우리는 이를 ‘감각적 배부름’이라고 보고 연구했다. 쥐는 해당 신경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면 배부름을 느끼지 못해 계속 먹는다. 반대로 그 신경을 일부러 작동시키면 억지로 배부름이 생겨 먹다가 바로 중단한다. 위고비 같은 약도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생활 속에서 가족, 사회와 같이 중독 예방해야”
–그렇다면 약에 의존하지 않고 비만을 치료하려면 중독으로 보고 접근해야 하나.
“그렇다. 약은 대증 치료제이다. 열날 때 해열제 먹듯 식욕이 높은 증상을 치료하는 식이다. 대증 치료제는 근원적인 치료제가 아니어서 약을 안 쓰면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 비만의 원인은 사람마다 형태가 다르지만, 결국 생활 속에서 음식 중독에 빠지는 것이다. 외로울 때 먹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먹는 식이다.”
–음식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중독이 심한 사람은 식욕을 못 참는다. 퇴근 후에도 다시 밖에 나가서 먹고 오거나 혼자서 치킨을 두 마리나 시켜 먹는다. 거의 마약이나 도박 중독자가 다시 유혹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혼자 끊기 힘들면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앱(app·응용프로그램)도 도움이 될 수 있다. 2020년에 생활 습관을 교정해 비만을 해결하는 디지털 치료제도 개발했다.”
–식욕이 과도하면 중독이 되지만 가족과 같이 요리하거나 식사하는 것은 유대감을 높이는 데 좋지 않나.
“사람들이 그 부분에서 헷갈려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담배나 도박, 마약은 누가 봐도 무조건 나쁘다. 그런데 음식은 좋은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이 섞여 있어서 합리화하기 쉽다. 내 몸에 좋다거나 가족 건강에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잘 보면 유익한 부분과 해로운 부분이 보인다. 가족이 함께 맛있는 불고기를 만들어서 먹는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뒤에 설탕이 듬뿍 들어간 디저트를 한껏 사서 먹는 것은 그렇지 않다.”
–개인이나 가족 차원을 넘어 정책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4~5년 전 보건복지부에서 음식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인 ‘먹방’을 금지하려고 한 적이 있다. 맛있게 먹는 걸 넘어 지나치게 먹거나 이상한 음식을 먹는 것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 아직 사회적 합의를 이끌지 못해 성과는 없다. 외국에서는 아이들이 보는 TV 프로그램 전후로 과자나 설탕음료 광고를 못 하게 한다. 초등학교에 콜라 자판기를 없앤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해로운 부분은 막고, 대체 인공 감미료 소비를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소득층이 건강한 음식을 먹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뇌의 중독 형태 알면 맞춤 치료 가능”
–뇌에서 음식 중독이 일어나는 과정은 얼마나 밝혀졌나.
“1500년대 세계 지도는 당대의 지식이 총집결한 결과지만, 지금 시각으로 보면 엉성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 음식 중독과 관련된 뇌 지도도 그런 상황이다. 뇌 어디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어디가 쾌락 중추이고, 감정은 어디서 처리하는지 굵직굵직하게는 안다. 하지만 세부적인 연결 과정을 모른다.”
–뇌를 자극해서 음식 중독을 치료하는 전자약도 가능한가.
“그렇다. 디지털 치료제가 행동을 교정하는 소프트웨어라면 뇌에 직접 전기자극을 주는 전자약 하드웨어도 있다. 두피를 통해 뇌 전두엽에 전기자극을 주면 자제력이 높아진다. 우리 연구실에서 전두엽 기능을 강화하면 식욕을 더 잘 조절한다는 실험 결과를 얻어 곧 논문을 투고할 예정이다.”
–지난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뇌에는 ‘맛집 탐방 신경’과 ‘음식 먹기 신경’이 따로 있다고 발표했다.
“사람이 맛집을 찾아다니듯 쥐도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탐색한다. 그러다가 먹이를 찾으면 먹기 시작한다. 쥐의 뇌에 특정 신경이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소형 현미경을 달고 실험했더니 맛집 탐방과 음식 먹기에서 각각 다른 신경세포가 작동했다. 해당 신경을 자극하면 바로 그 행동이 나타났다. 원숭이도 쥐와 마찬가지였다.”
–그 실험이 비만 치료에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의 뇌에서 식욕을 관장하는 조정기가 두 개 있다는 뜻이다. 비만 환자 중 어떤 분은 늘 회사 식당만 가서 많이 먹는다고 했다. 이런 사람은 맛집 탐방 신경은 억제할 필요 없고 음식 먹기 신경만 조절하면 된다. 어떤 환자는 산 넘고 물 건너 맛집을 찾아가서 엄청 많이 먹는다. 이 경우 두 신경을 모두 조절해야 한다. 맛집 찾아 멀리 가지만 막상 가서는 조금만 먹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살이 찌지 않는다. 사람마다 식욕 조정기의 형태를 알면 맞춤 의약이 가능하다.”
–비만에 대한 맞춤 의약은 어떤 효과가 있나.
“옛날에는 당뇨병은 하나로 봤지만, 지금은 1형과 2형으로 나눈다. 그에 따라 약도 완전히 다르다. 마찬가지로 비만도 사람마다 원인이 다른 것 같다. 분류를 잘 하면 비만 형태에 맞는 치료를 할 수 있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의사과학자 길 찾아’
–환자를 보던 임상 의사에서 어떻게 의사 과학자가 됐나.
“3년 정도 대학병원 내분비과에서 임상 교수를 할 때 좀 한계를 느꼈다. 당뇨 환자에게 약만 처방하지 않고 진료시 간을 늘려 왜 음식을 많이 먹는지 생활 습관을 자세히 묻고 교정하려고 했다. 환자도 좋아하고 병원에도 도움이 됐지만, 그것보다 음식 중독 연구에 매진해서 근본 원인을 찾는 게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10년 전 그런 생각을 하고 진로를 바꿨다.”
–이번 달에 서울대 자연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로 소속을 옮겼다.
“이번 달에 임용됐다. 의대 교수도 겸한다. 음식 중독 연구를 9년 정도 하다 보니 의학 연구보다 뇌 연구에 점점 가까워졌다. 같이 연구하는 동료도 심리학이나 뇌과학 연구자들이다. 서울대 뇌인지과학과는 자연대와 사회대 심리학과, 의대가 함께 만든 과이다. 더 신경과학 연구자로 바뀌는 전환점이 됐다.”
–생명과학자와 의사과학자는 어떤 점이 다른가.
“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 정도 차이라 할까. 생명과학자는 지렁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꽃이 어떻게 피는지 근본적인 연구를 한다면, 의사 출신 과학자는 그런 연구를 통해 인류의 질병을 어떻게 극복할지 해결책을 찾는다.”
–최근 바이오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10년 전보다 의사과학자의 환경이 바뀌지 않았나.
“많이 좋아졌다. 의사과학자 양성 과정도 있고 연구비와 임상시험 할 기회도 많아졌다. 하지만 의대생이 의사과학자로 진로를 잡으려면 40대, 50대에 행복하게 연구할 수 있을지 확신해야 한다. 그런 본보기가 될 의사과학자들이 생겼다는 점이 더 큰 변화이다. 서울대 의대 기초교실에도 전문의 출신 의사과학자가 8명 있다. 10년 전만 해도 전문의가 의사과학자에 지원하면 생뚱맞은 일이었다. 이제는 이상하게 보지 않고 그냥 새로운 종류의 경력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의과학 연구 수준을 외국과 비교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최고 연구실은 세계 어느 곳과도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이끄는 연구실까지는 아니어도 그 바로 아래 그룹은 국내에도 꽤 있다. 20년 전에는 무조건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 연구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최고 연구실이 어디에 있는지 따지면 된다. 연구비도 총액은 미국이 우리보다 많지만, 개인으로 따지면 우리나라가 더 많다. 지원은 좋은데 연구 제도와 문화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혁신적인 결정을 빨리 할 수 있어야 한다.”
☞최형진 교수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내과학 석사와 분자유전체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병원과 충북대병원에서 내분비내과 교수로 환자를 진료했다. 2015년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로 오면서 임상의사에서 의사과학자로 진로를 바꿨다. 올 3월 서울대 자연대 뇌인지과학과 교수(의대 겸무)로도 임용됐다.
그동안 비만 치료가 가능한 디지털 인지행동 치료제를 개발했으며, 생쥐와 원숭이를 통해 뇌에서 음식 중독이 일어나는 원리를 규명하고 있다. 최근 출시된 비만 치료제의 작용 원리를 밝히는 연구도 하고 있다.
최 교수는 현재 대한비만학회와 대한해부학회, 대한내분비학회, 신경내분비연구회 학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 교수 집안은 대를 이어 의학에 몸을 담고 있다. 부친은 당뇨병 치료의 권위자 최수봉 건국대 명예교수이고, 조부는 고(故) 최현 전 가톨릭의대 생리학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