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이 4주째에 접어든 가운데, 정부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1일 전공의와 비공개로 만났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대학병원 의료체계를 ‘전문의’ 중심으로 바꿀 계획도 공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인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12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더 적극적으로 의료계와 소통해 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오후에는 박 차관이 응급의료 현장 의료진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박 차관은 “수련생인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해 온 병원 운영 구조를 이번 기회에 전면 개편해야 한다”며 “대학병원의 인력구조를 ‘전문의 중심’으로 바꿔 수련생인 전공의를 제대로 수련하고, 환자에게는 전문의 중심의 질 높은 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전환’은 앞서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4대 의료개혁 과제 중 하나다.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비율은 30~40%로,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전공의가 10% 내외라는 점을 고려할 때, 비정상적인 구조라는 게 정부와 의료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는 전문의 배치 기준을 강화해 병원의 전문의 고용 확대를 유도할 계획이다. 변경된 기준에 따르면 전공의 1명은 0.5명으로 계산되어 신규 의료기관이 전문의를 더 많이 고용하도록 유도한다. 박 차관은 “의료기관을 설립할 때 전공의를 전문의의 절반으로 고용하도록 산정하는 등 전문의를 보다 많이 고용하겠다”고 말했다. 또 대학병원 내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려는 일환으로, 현재 1700명 규모의 국립대병원 전임교수 정원을 2027년까지 1000명 이상 추가로 늘릴 계획이다.
정부는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지원사업’도 추진한다. 박 차관은 “전문의 고용을 확대하고 전공의에게 위임하는 업무를 축소하며, 인력 간 업무 분담을 지원하는 시범사업 모델을 만들어, 2025년부터 국립대병원과 지역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정부는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료현장 사례를 검토하고, 병원에서 생각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의 모형과 이를 위해 필요한 개선 사항을 점검하고 있다”며 “다음 주에는 전문의 중심 병원 등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으로, 현장 의견을 수렴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구조 개선을 신속하게 이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병원이 전문의를 충분히 고용하고,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행태와 문화를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1년 단위 단기 계약 관행을 개선해 장기 고용을 보편화하고, 육아휴직과 재충전을 위한 연구년 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전문의 중심 병원 운영에 필요한 수가 지원도 병행 추진하는 한편, 입원 전담 전문의 제도를 개선하고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확대해 전문의 중심 인력 운영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대학병원의 임상, 연구, 교육이 균형적으로 발전하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앞서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18일까지 정부가 적극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19일부터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사직할 수 있다고 집단행동을 결의했다. 이와 관련해 박 차관은 “교수들도 기본적으로 의료인이다”라며 “의료 현장을 떠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료법에 근거한 각종 명령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박 차관은 의대 교수 집단 사직이 의료 현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응급과 중환자 수술 등 필수의료에 대해서는 유지하겠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계획을 갖고 사직서 제출을 하겠다는 의미인지 파악이 필요하다”며 “교수 사회 동요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대화에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만 의대 증원 규모 2000명에 대해서는 “정부는 2000명 증원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기존의 뜻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