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하는 한국 지역 의료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의대생 선발부터 교육, 수련 과정까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12일 국회에서 ‘열린 의사 인력 증원 규모와 방법 및 지역·필수 의료 강화 토론회’에서 김영수 경상국립대병원 공공보건사업실장은 “지역의사제를 9년짜리 의무복무 의사가 아니라 지역에 필요한 인재로 만들도록 다각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라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영수 실장은 “경남의 경우 인구당 의사 수가 전국 평균보다 적고, 응급의학과 의사는 물론 하동군의 경우 병원급 의료기관도 없는 상황”이라며 거주민은 물론 지역 의사들도 고령화하고 있어 진료의 역량이나 질을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처했다고 전했다. 경남에서 가장 큰 삼성창원병원의 경우에도 전공의가 제대로 충원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김 실장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자체가 나서 입학부터 졸업, 의료 현장에 나갈 때의 커리어까지 계속 지원해 주는 조직과 인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 전담 부서와 인력, 조례와 법률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일본 오키나와현의 사례를 거론했다. 오키나와현은 일본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작은 섬이나 산간오지가 많아 지자체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의료 수요를 맞춰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키나와현은 의사 인력 확보에 공을 들여 의대생 수학(修學) 지원, 의사 커리어 연수·양성 지원, 낙도·벽지 의사 파견 사업, 의사 확보·정착 지원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초등학생이 8명뿐이 안 되는 츠켄 섬의 경우 지방정부 차원에서 상주 의사와 전공의를 두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지역·공공 의료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김 실장은 “현재 공중보건의의 경우 아무런 수련도 받지 않고 6년제 교육을 마치고 바로 시골 보건지소에 파견돼 만성질환이나 응급환자 대응에 한계를 보인다”면서 기피과 전공의에게 보조금을 주거나 공보의에게 응급의료 교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어 “보건지소를 관리할 보건소도 최근 진료 기능이나 의학적 기능이 없어지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일본처럼 지역 거점 공공병원이 지역 의료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 지역 할당제를 두고 “단순한 선발이나 장학금 지급보다는 선발 후 장학금까지 지급하는 것이 지역 의사를 양성하는 데 훨씬 효과가 있다고 본다”며 “다만 지역에서 배출한 의사들이 해당 지역에서 수련까지 받을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또 “정부 발표대로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본격적으로 의사가 배출되는 오는 2031년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며 “지역 공공병원에 제대로 된 수련 자리를 주는 방안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지역 거점 병원의 의사들을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 정기적으로 출장 보내는 방안을 제시한 것을 두고도 “주 1회나 주 2회 파견으로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 교실 교수는 “수도권은 이미 의사가 포화상태고 앞으로도 더 초과하겠지만, 지방의 경우 의사가 지금도 부족하고 앞으로도 부족할 것”이라며 “추계 자료에 따르면 오는 2040년 서울만 의사가 초과이고 다른 모든 지역은 의사가 부족하리라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사를 전체 몇명 증원하겠다는 것보다 지방과 서울을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경북·충남·충북·전남·제주의 경우 의사 부족 문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의료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전제이긴 하지만, 이들 5개 지역은 500명 증원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기에 500명 이상 증원하는 것이 맞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수급 추계를 한 결과 현재의 의료시스템에서 의대 정원을 현재보다 1000명 증원하면 오는 2050년 이후 과잉 공급으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재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에 대해 “현재 사태의 본질은 의사들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이라며 “현행 행위별 수가제도를 의료 행위의 가치에 맞게 보상하는 가치 기반 수가제도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