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정신건강정책 비전 선포대회를 열고 10년 이내에 자살률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배경에는 우리 국민의 정신 건강과 관련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어서다. 최근 6년새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72% 늘었고,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환자는 100만명을 넘었다.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부동의 1위다.

중증 정신질환자 정신 건강 관리에도 구멍이 뚫혔다. 올해 8월 경기 분당 서현역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와 최근 아버지에게 흉기를 휘두른 20대 아들 모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정신 질환 병력자로 드러났다.

◇ 우울증, 자살률...코로나19 겪으면서 커져

이날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자살 인구는 1만3352명으로,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3.6명을 기록했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11.1명의 2배가 넘는 수치다. 높은 자살률에는 정신적인 이유가 크다고 정부는 분석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자살 원인 중 정신적인 문제가 39.8%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경제(24.2%), 질병 (17.7%) 순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수는 2015년 289만명에서 2021년 411만명으로 72%늘었다. 우울증 환자수는 작년 100만744명으로,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2018년 75만 2976명에서 33% 가량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거치면서 청소년 우울증 환자는 늘고 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22년 만 6~17세 아동·청소년 우울증 진료 인원은 3만7386명으로 2020년 2만3382명보다 1만4004명(59.9%) 폭증했다. 한국생명존중재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6936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 6375명보다 8.8% 늘었다.

◇ 자살률 부동의 1위...정신과 의사수 OECD 최하위권

이렇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 수는 늘었지만, 인프라는 부족하다. 복지부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 당 정신과 의사 수는 2020년 0.08명으로 OECD 29개 회원국 평균 0.18명의 절반 이하였다.

가뜩이나 정신과 의사 수가 적은데, 전문의들은 민간병원으로 나가면서 중증 환자를 돌보는 대형병원에서는 정신과 의사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립대 병원 9곳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립대 병원 정신과 평균 진료 대기 일수는 31일로 2017년 14.5일에서 5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서울대병원의 대기일수는 99일이었다.

정신과 진료 대기 기간이 2배로 늘어난 건 환자 수가 늘었지만, 정신과 전문의 숫자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국립대 병원 9곳의 정신과 전문의 숫자는 2017년 80명에서 지난해 82명으로 큰 변화가 없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신과 전문의는 2017년 3651명에서 2021년 4179명으로 4년간 14.5% 증가하는 데 그쳤다. 환자 증가 속도의 절반이 안 된다.

국립정신병원 5곳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충원율은 41.2%로, 필요한 의사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정부가 지난해 보건 예산 가운데 정신건강에 배정한 금액은 3158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1.9%에 불과하다. 세계보건기구(WHO) 정신건강 배정 예산 권장치는 5%다.

◇상담 치료 등 조기 치료 병원 문턱 높아

초기 치료에도 구멍이 뚫렸다. 정신질환은 경증인 초기부터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병원 문턱이 높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1′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정신 장애 진단을 받은 적 있는 사람 가운데 정신과 의사 등 정신건강전문가와 상담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의 비율은 12.1%에 그쳤다. 정신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 10명 중 9명은 상담 치료 경험이 없단 뜻이다.

중증 정신질환 환자 관리는 더 어렵다. 정신질환이 중증으로 진행되면, 사후 관리가 어려워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치료를 중단한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올들어 여러 ‘묻지마 범죄’를 일으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환자의 8명 중 7명은 지역 사회에서 소외돼 있었다. 지난 2021년 조현병과 망상장애 환자 가운데 지역사회 정신건강증진사업을 이용한 환자의 비율은 13%에 그쳤다. 전국 정신 재활 시설은 중증 정신 질환자의 1% 정도만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이나 도박 같은 중독 역시 정신질환에 속하지만 전담 의료진은 부족했다. 마약 중독으로 치료를 받은 20대 환자는 2018년 893명에서 작년1383명으로 54.9% 늘었지만, 같은 기간 정부 지정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173명에서 114명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