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세동은 심장이 혈액을 제대로 짜내지 못해 파르르 떨리는 상태가 나타나는 질환으로 부정맥 중 가장 흔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심방세동 환자는 지난 2017년 18만2786명에서 2021년 24만5464명으로 4년만에 34.3% 늘었다. 국내 80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은 심방세동을 앓고 있다.
문제는 심방세동이 길어지면 심장이 정상 활동을 하지 못하면서 혈전이 생겨 뇌졸중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근본적으로 고치는 치료제는 없고 심방에 카테터(관)를 밀어 넣어 심방세동 발생 부위를 절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가 관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시술 부위를 정확히 절제하고 있는지, 출혈 같은 합병증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X선 촬영을 한다. 이 과정에서 시술 한 번에 노출되는 방사선의 양이 연간 노출되는 자연 방사선량의 7배나 된다. 의료진은 방사선이 뚫지 못하는 납복을 입고 있지만 환자는 맨몸인 상태에서 방사선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임홍의 한림대성심병원 부정맥센터 교수는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되면 발암 위험이 매우 높아지므로 5년 동안 100밀리시버트(mSv·방사선 선량의 단위), 한 해 평균 20mSv를 넘지 않도록 법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며 “하지만 부정맥 시술 한 번에 노출되는 방사선량이 평균 15mSv 정도고, 만약 시술 전에 컴퓨터단층촬영(CT)까지 했다면 이는 체르노빌 사고 때 주민이 노출된 양(30mSv)보다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엑스레이 투시 영상 없이 ‘방사선 제로’ 부정맥 시술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2022년 3월에는 국내 최초로 방사선 제로 부정맥 시술 1000례를 넘겼다. 같은 해 12월에는 심방세동 최신 시술법인 냉각풍선도자절제술도 국내 최초 1000례를 돌파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방사선 제로 시술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의료진을 교육해 더 많은 환자가 방사선 제로 시술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임 교수는 입원 환자의 심전도와 심박수, 산소포화도, 체온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웨어러블 기기(스마트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를 상용화해 간호사의 업무량을 6분의 1로 단축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지난 15일 경기도 안양시 한림대성심병원에서 임 교수를 만나 실제로 스마트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설명을 듣고 환자별 바이탈 측정 상황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은 임 교수와의 일문일답.
-‘방사선 제로’ 부정맥 시술의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되면 암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병원에서 치료용으로 쬐는 방사선도 그렇게 위험할 수 있나.
“아시다시피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되면 암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방사선에 노출된다고 해서 당장 암이 생기는 게 아니라 수년에서 수십 년 뒤에 발생하므로 정확한 영향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 전문가들은 100mSv 정도의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은 20~30년 후 암 발생 위험이 0.5% 이상 증가한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보다는 젊은 사람들, 특히 소아나 임신부가 방사선에 많이 노출되면 향후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제 방사선방호위에서 허용하는 방사선 종사자의 피폭방사선량은 매년 20mSv로 제한한다. 유럽연합에서는 연간 6mSv로 더욱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 국토교통부도 항공사 승무원의 피폭방사선량을 연간 6mSv으로 제한하도록 개정했고, 개인별 자료보관기간도 기존 5년에서 항공승무원 퇴직 후 30년(또는 75세)까지 연장했다. 임신한 승무원에 대해서는 임신 인지일로부터 출산할 때까지 1mSv로 관리하도록 강화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약 20만명이 현장 복구 작업에 투입돼 평균 120mSv 만큼 노출됐다. 이보다는 적게 노출된 구조대원과 노동자까지 합하면 최대 60만명에 이른다. 그린피스에서는 체르노빌 사고로 약 27만명에게 암이 발생했으며 그 중 9만3000건 정도가 치명적인 수준이라 보고 있다. 또한 체르노빌 사고로 고향을 떠난 피란민은 평균 30mSv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부정맥 시술에 노출되는 방사선량이 15mSV 정도다. 만약 부정맥이 1년 이내에 재발해 재시술을 받아야 한다면 30mSv 가까이 노출되는 셈이다.
-시술하는 사진을 보니 다른 의료진이 부정맥 시술을 할 때와 달리, 의료진이 납옷을 입지 않고 일반 수술복을 입더라. ‘방사선 제로’라는 말이 실감난다. 국내외 다른 의료진들에게 방사선 제로 시술에 대한 교육도 앞장서서 하고 있다고 들었다.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모두 폐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폐암에 걸리지 않기 위해 금연을 하지 않나. 이처럼 필요없는 방사선 노출은 최소로 줄여야 한다. 치료 목적상 방사선 노출이 불가피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 그러므로 방사선 노출을 피하는 쪽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
직접 지금보다 더 많은 환자를 방사선 제로 시술법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다른 의사들도 방사선 제로 시술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내가 3명에게 가르친다면 그 3명이 직접 시술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그들이 다른 의사 3명에게 가르칠 수 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언젠가는 거의 모든 의료진이 거의 모든 환자에게 방사선 제로 시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2019년 ‘방사선 제로 시술’에 관한 교육도 가능한 시술실을 세팅했다. 그해 3월 첫 교육을 시작했다. 당시 시술실이 아주 비좁았음에도 국내 의료진 12명이 와서 꽉 찬 상태에서 교육을 진행했다. 그해 5월에는 두 번째 교육을 진행했다. 교육을 듣고자 하는 의료진이 너무 많은데 공간이 좁아 10명으로 제한할 정도였다. 그 다음 달에는 병원에서 국내 최대 크기인 하이브리드 수술실을 내어줘 다수 의료진들이 좀 더 전문적이고 편안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해 7월에는 미국 텍사스 심장 연구센터와, 지난해에는 캐나다 토론토대, 미국 미네소타대, 홍콩 퀸메리병원 의료진도 방사선 제로 시술 견학을 위해 방문했다. 그 후 점점 더 국외에서 방사선 제로 시술에 대한 관심이 늘어 올해는 대만, 홍콩, 마카오 같은 아시아 국가 의사들이 이틀간 워크숍으로 3차례 방문했다.
해외 의료진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먼저 국내 의료진에게 더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2024년에는 국내 의료진 대상 8회, 해외 의료진 대상 4회 총 12회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의료진 교육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더 많은 의료진이 방사선 제로 시술을 할수록 더 많은 환자는 안전하게 시술을 받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최근 스마트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개발해 일부 병동에 상용화했다. 환자의 바이탈을 시시각각 모니터링할 수 있어서 의료진이 편할 것 같다. 환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
“우리가 개발한 스마트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씽크(ThynC)’는 10g이 채 안 되는 웨어러블 기기로, 환자의 가슴과 겨드랑이, 손목에 부착해 사용한다. 가슴에 붙인 기기는 환자의 심전도와 심박수 및 호흡수를, 겨드랑이에 붙인 기기는 체온을, 손가락에 꽂아 손목시계에 연결한 기기는 산소포화도를 측정해 블루투스 무선통신을 이용해 데이터를 서버에 전송한다.
이를 통해 심전도, 심박수, 호흡수, 체온과 산소포화도는 실시간 지속적으로 모니터 되고 필요시 전자의무기록에 데이터로 저장한다. 혈압은 측정하면 측정값이 바로 모니터로 전송되고 전자의무기록에 동시에 입력된다.
이 장치는 2020년 초부터 개발을 시작해 올해 초 완성했다. 국내 의료기기벤처기업인 씨어스테크놀로지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상용화했다. 현재 한림대성심병원 13층 스마트병동 전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내년에는 7층 병동 전체에서 사용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간호사가 일정 시간마다 환자들을 찾아가 각각 바이탈을 재거나 확인하고 수기로 입력해야 했다. 하지만, 이 기기가 있으면 실시간으로 환자의 바이탈 값을 물리적 제한 없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전자의무기록에도 자동으로 입력된다. 사람이 직접 입력하는 것이 아니므로 측정 시간과 입력 시간의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입력 오류 없이 정확하게 의무기록으로 저장된다.
혈압 측정은 아직까지는 간호사가 직접 재야 한다. 하지만 기존에는 간호사가 혈압 수치를 직접 입력하다보니 오류가 종종 났다.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을 120/80mmHg을 넣으려다 12/80mmHg나 20/80mmHg로 쓰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씽크와 와이파이로 연결된 혈압기로 환자 혈압을 재면 자동으로 수치가 입력돼 오류가 나지 않는다. 또한 임의로 수치를 수정할 수 없어 신뢰도가 높다.
각 환자마다 바이탈 측정값이 어떤지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대형화면으로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다. 기존에는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보호자가 간호사에게 알리고, 간호사가 방송을 통해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하지만 씽크는 환자 바이탈 값이 디폴트 값(환자 개인별 정상범위 값)에서 벗어나면 자동으로 간호사 스테이션과 담당 의료진에게 알람으로 뜬다. 응급 상황 발생 시 대처하는 시간을 대폭 줄여주는 셈이다.
또 씽크 안에는 리얼타임 로케이팅 기능이 장착돼 있어서 환자가 병원 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려준다. 자기 병상을 벗어나면 안 되는 감염병 환자나 중증 환자가 그 위치를 벗어날 경우 알림이 울린다. 마치 가게에서 구매하지 않은 상품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갔을 때 비상알람이 울리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환자가 병상 바깥에 돌아다니다가 쓰러졌을 경우에도 바이탈 이상과 함께, 환자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바로 알려준다. 이 덕분에 스마트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업무량이 약 6분의 1만큼 줄었다.
국내에서 이런 스마트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은 최초다. 물론 해외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 중에서도 이렇게 가볍고, 여러 기능이 장착돼 있는 것은 없다. 병원 내에서도 반응이 좋아 향후 신관의 전체 병동에도 씽크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의료진의 업무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환자의 소중한 생명을 살릴 시간을 늘려 준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 같다. 앞으로 개선해야 할 기능이 있을까.
“지금보다 훨씬 효율을 높이기 위해 씽크에 장착할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환자 수도 많고 각 환자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바이탈 데이터가 엄청 많은데 의사가 하루 종일 이것만 들여다볼 수는 없지 않는가. 하지만 현재는 환자 바이탈이 조금만 달라져도 알람이 자주 떠 진짜 심각한 상황인지 아닌지 알기가 어렵다.
정교한 알고리즘을 개발해 환자의 바이탈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추적 관찰이 필요’한지, 또는 ‘당장 응급조치가 필요’한지 분류해 알려주는 기능을 장착할 예정이다.
또한 수액 잔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주는 기능도 장착할 예정이다. 일반 수액은 잔량을 세밀히 확인할 필요가 없지만, 심장질환 관련 약물이나 항암제는 잔량을 확인해 약을 바꿔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수액 잔량 측정 센서를 달아 씽크 시스템이 연결하는 방식으로 간호사가 일일이 병동을 돌지 않아도 각 환자의 수액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는 기능도 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