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자궁이식 수술을 주도한 박재범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17일 "누구나 간절히 원하던 임신과 출산이라는 소망을 이룰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날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대한이식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자궁이식은 국내에서 이제 첫 걸음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 교수를 포함해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이교원 교수와 산부인과 오수영·이유영·이동윤·김성은·노준호 교수가 참여한 다학제 자궁이식팀은 이날 학회에서 국내 첫 자궁이식 사례를 공개했다.
박 교수팀은 지난해 7월 '마이어 로키탄스키 쿠스터 하우저(MRKH) 증후군' 환자인 35세 여성에게 환자 친어머니의 자궁을 기증받아 이식수술을 시도했다. MRKH 증후군은 태어날 때부터 자궁과 질이 없거나 발달하지 않는 질환이다. 여성 5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하지만 청소년기 생리가 시작하지 않아 병원을 찾았을 때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자궁이식은 아직 임상 연구 단계라서 환자에게 기증을 받아야 한다. 박 교수는 "이번에 수술을 받은 환자는 다행히 난소 기능이 정상이어서 호르몬 영향도 없고 배란도 가능해서 자궁을 이식 받으면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산부인과 의료진과 힘을 합쳐 첫 자궁이식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첫 수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환자에게 이식한 자궁의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수술 2주 만에 자궁을 제거해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44세 뇌사자 기증자가 나타났고 이식팀은 다시 한 번 자궁을 기증 받아 이식을 시도하기로 했다. 첫 이식 수술이 실패한 이후 다시 자궁을 재이식한 사례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다행히 이식 수술은 성공을 했고 자궁도 환자 몸에 잘 안착했다. 박 교수는 "자궁이식이 성공했다는 것은 월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며 "환자가 자궁을 이식 받은 후 29일 만에 생애 처음으로 월경을 경험했다"고 했다. 얼마 전 자궁이식 수술 후 10개월째 진행한 조직검사에서도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학계에선 자궁이 환자 몸에 완전히 자리잡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이식 성공은 삼성서울병원 소속 이식외과·산부인과·성형외과·영상의학과·병리과·감염내과 의료진으로 구성된 다학제 자궁이식팀이 2020년 발족한지 불과 3년만의 얻은 결실이다.
의학계에선 자궁은 이식수술이 어려운 장기로 보고 있다. 자궁은 다른 장기에 비해 혈관이 비교적 작고 위에서 아래로 혈관 경로가 길어 적출과 이식이 어렵고 혈전 발생 가능성도 큰 편이다. 박 교수는 평소 뇌사자 이식의 범위를 확대하고 가족 간 교환이식을 통해 이전까지 수술 순번만 기다리다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숱한 만성신장염 환자를 살려왔다. 이유영 교수도 부인암 환자의 자궁적출 경험이 풍부하다는 게 병원 안팎의 평가다. 박 교수는 "어렵게 이식했지만 다시 자궁을 드러내는 일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힘든 순간이었다"며 "첫 실패는 참담했지만 환자와 의료진이 좌절하지 않고 의지를 갖고 도전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자궁이식을 받은 환자는 난소가 '제기능'을 하는만큼 환자의 난자와 배우자의 정자를 수정시킨 태아를 자궁에 착상시켜 출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번에 수술을 받은 환자도 난소가 정상 기능을 하고 있어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상태다. 환자는 현재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임신을 시도하고 있다.
박 교수는 "자궁이식은 MRKH 환자 등 자궁 요인에 의한 불임으로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환자들이 임신과 출산을 통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최근 해외 연구 사례를 보면 자궁이식을 통해 임신에 성공하는 확률이 80%에 달한다는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자궁이식의 공여자는 다른 장기처럼 환자의 가족이 될 가능성이 높고 특히 기증자가 대부분 환자의 어머니나 자매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자궁이식 수술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나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 교수는 "자궁이식은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가족 중에서 공여자를 찾을 수 밖에 없는데 다른 장기의 기증과 다르다고 봐서는 안된다"며 "의학적으로 못하는 것과 할 수 있는 데 안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며 환자가 임신이라는 새로운 선택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장기이식 분야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장기이식 분야는 여전히 제한이 많다"며 "생명 존중 측면에서 까다로운 절차들이 있지만, 임상 현장과 다르게 현실이 뒤늦게 따라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에서는 사망 후 장기기증 제도가 활성화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며 "이식수술이 활성화된 간과 신장, 심장, 폐처럼 자궁을 포함해 아직 이식이 시행되지 못하는 다른 장기로 확대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