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교정 기술을 질병 치료제로 사용하는 치료법을 승인했다.
영국 보건부 산하 의약품·의료기기안전관리국(MHRA)은 16일(현지 시각) 12세 이상 겸상 적혈구 빈혈증과 지중해빈혈 등 혈액질환을 치료하는 ‘카스거비(Casgevy)’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카스거비에 사용된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는 3세대 유전자 교정 기술로, 개발자들이 202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특정 DNA에 결합하는 유전물질과 해당 부위를 잘라내는 효소 단백질을 결합한 형태이다.
카스거비는 미국의 버텍스 파마슈틱컬스와 크리스퍼(CRISPR)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혈액질환 치료제다. 환자의 골수 줄기세포에 문제가 있는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아 고친 뒤 다시 환자에게 정맥주사하는 원리다.
먼저 환자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한 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BCL11A 유전자를 잘라낸다. 이 유전자는 태아 시기에 적혈구와 헤모글로빈이 정상적으로 형성되는 일을 방해한다. 이 유전자를 잘라낸 뒤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면 정상적인 적혈구가 생성된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과 지중해빈혈은 몸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혈액세포인 적혈구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분자 헤모글로빈에 돌연변이가 생겨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은 가운데가 움푹 팬 모양이어야 할 적혈구가 낫처럼 생긴 질환이다. 이런 적혈구의 기형 때문에 산소를 실어나르는 효율이 떨어져 빈혈 증상과 함께 혈액이 끈적끈적해지며 통증을 유발한다.
지중해 빈혈은 적혈구에서 산소를 붙드는 역할을 하는 헤모글로빈이 부족해져서 걸리는 질환으로, 숨가쁨과 피로, 부정맥이 증상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평생 동안 정기적으로 수혈을 받거나, 골수 이식을 해야 했다.
연구진은 카스거비 치료를 받은 겸상 적혈구 빈혈증 환자 29명 중 28명이 최소 1년 간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혔다. 또 카스거비 치료를 받은 지중해 빈혈 환자 42명을 관찰한 결과 이들 중 39명이 최소 1년 간 적혈구 수혈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효과가 나타났다. 나머지 3명은 수혈받아야 할 필요성이 70% 이상 감소했다.
이번에 카스거비가 승인되며 겸상 적혈구 빈혈증과 지중해빈혈도 이제 치료 가능한 질환이 됐다. 케이 데이비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사이언스 미디어 센터를 통해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가 승인된 일은 미래에 더 많은 유전병을 치료하기 위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현재 카스거비를 승인할 것인지 검토하고 있다. FDA는 내달 초쯤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