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와이브레인 대표가 지난 18일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와이브레인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이정아 기자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우울감을 겪는 위험군 환자가 2019년 3.2%에서 2021년 22.8%로 7배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16.9%로 다소 줄었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보다는 여전히 5배에 이른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비율도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6%에서 2021년 16.3%, 2022년 12.7%로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환자들은 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양을 증가시키는 화학물질로 만든 약물로 치료하고 있다. 세로토닌의 양이 줄어든 사람은 남들보다 행복감을 덜 느끼기 때문에 세로토닌이 재흡수되는 것을 막아 우울감을 낮추는 원리다. 약물 치료가 어려운 경우에는 병원에서 전기경련치료(ECT)를 받기도 한다.

최근 국내 기업인 와이브레인은 세계 최초로 우울감을 낮추는 ‘전자약’을 개발해 상용화했다. ‘마인드스팀’으로 불리는 이 약은 머릿속에 약한 전류를 흘려보내, 우울증 환자에게 낮아진 전전두엽의 기능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지속시켜 우울증을 치료하는 원리다. 현재 삼성서울병원과 충북대병원, 인천성모병원, 고려대안산병원, 영남대병원, 아주대병원, 경상국립대병원, 전북대병원을 포함해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병의원의 200곳에서 쓰이고 있다.

와이브레인은 마인드스팀과 비슷한 원리로 조기치매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조현병, 중독, 뇌졸중, 파킨슨병을 고치는 전자약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 18일 경기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와이브레인에서 이기원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이 대표와 일문일답.

– 우울증을 치료하는 전자약이라니 어떤 원리인가?

와이브레인이 개발한 마인드스팀 사용방법./이정아 기자

“마인드스팀은 이마에 장비가 달린 머리띠를 두르고 뇌에 약한 전기자극을 가하는 웨어러블 의료기기다. 두뇌에 전기 자극을 가해 우울증 같은 감정 장애나, 코로나19 감염 후 브레인 포그(머릿속 안개가 낀 듯 멍한 느낌으로 기억력, 집중력이 떨어지는 현상) 등 인지 능력 저하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자면 전극 두 개를 통해 2mA(밀리암페어) 정도의 전류를 두피에 흘려보내면 이중 20~40% 정도가 두개골을 관통해 들어가는 경두개직류자극술(tDCS) 기반 기술이다.

전류가 대뇌피질에 도달하면 두 가지 효과가 있다. 먼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신경세포를 자극시켜 활성화할 수 있다. 원래 건강할 때 그 신경세포에서 일어나는 만큼의 활동이 잘 일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두 번째는 효과는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에서 ‘시냅스 가소성’이 증가한다. 신경세포 간 정보 전달은 바로 이 시냅스에서 일어나는데, 전기 자극을 통해 칼슘 흐름이 증가하면서 신경세포 간 활동이 오랫동안 지속되게 한다.

마인드스팀은 두뇌에서도 인지 기능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배회측전전두엽’을 자극한다. 힘든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흔히 ‘정신줄 잡으라’고 하지 않나. 건강한 사람과 우울증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뇌파를 측정해 보면 이 배회측전전두엽에서 큰 차이가 난다. 건강한 사람은 이 부위가 활성화하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이 기능이 저하돼 있다. 즉, 뇌에서 감정조절이 어려워 남들보다 우울감을 크게 오랫동안 느끼는 것이다.

마인드스팀을 매일 30분씩 6주간 사용하면 약한 전류가 배회측전전두엽을 자극하면서 이 부위가 원래 건강했을 때만큼 강하고 오랫동안 활성화하도록 돕는다.

지난 9월 미국 뉴욕대 랭곤병원 신경과 연구진이 임상시험한 결과, 환자가 마인드스팀을 1회만 사용해도 우울증 증상이 나아지고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8월 국제학술지 ‘뉴로모듈레이션’에 나왔다.”

– 마인드스팀은 세계 첫 우울증 전자약으로 인정받았다. 이전의 디지털 치료제와는 어떻게 다른가?

“의료 목적으로 쓰이는 디지털 치료기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하드웨어 기반의 전자약’이다. 기존 의료기기가 매우 작아졌다고 보면 된다. 두 번째는 100% 소프트웨어로만 이뤄진 ‘디지털 치료제’다.

하드웨어 기반의 전자약은 이것은 뇌 특정영역을 표적으로 적용해 직접적인 효과를 보인다. 약과 비슷하다. 에너지를 보내 직관적을 효능을 낸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 의료기기보다 소형화됐으니 휴대폰으로 연동해 사용할 수 있다. 마인드스팀은 하드웨어 기반 전자약 중에서도 진보한 기술에 속한다.

디지털 치료제는 아무런 디바이스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접근성이 아주 뛰어나다. 반면 인지 행동 교정 치료를 위해서는 반복해서 끊임없이 사용해야 효과가 난다는 한계가 있다. 환자의 의지와 꾸준함이 없으면 치료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 그렇다면 실제로 약물처럼 우울증을 치료하는 효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다.

기자(왼쪽)가 마인드스팀을 머리에 두르고 전기 자극을 받으며 이기원 와이브레인 대표(오른쪽)와 인터뷰 하고 있다. 마인드스팀을 한 부위가 약간 따끔거렸지만 아프지 않았다./이정아 기자

“당연하다. 국내에서는 먼저 다기관 임상시험을 했었다. 항우울제와 똑같이 6주간 사용했을 때 결과를 비교한 것이다.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 등 다기관에서 96명 참가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한 결과 유의미한 효능을 확인했다.

서울성모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등 다기관에서 우울증 환자 67명을 대상으로 본인의 집에서 6주간 사용하도록 한 다음 효능과 안전성을 관찰하는 임상시험도 진행했다. 그 결과 전체 참가자 중 57.4%의 우울 평가 점수가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사용수칙을 제대로 지킨 사람들 중에서는 62.8%가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같은 기간 항우울제만 복용한 사람들은 50%만 정상 범위도 돌아왔다. 약물 없이도 마인드스팀이 약물 이상의 치료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지난 8월에 나온 랭곤대 임상시험 결과가 재미있는 점은 마인드스팀이 단 한 번 사용만으로도 전전두엽의 기능 활성화를 시킨다는 효과를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향후 마인드스팀으로 환자 맞춤형 치료와 재택치료, 장기간 추적관찰이 가능해졌다고 보면 된다.”

– 약인데 부작용은 없나.

“기존 항우울제에 비해서는 부작용이 덜 심각하다. 항우울제는 화학물질이라 온몸의 신경세포에 작용할 수 있어 식욕관련 소화계나 성기능 관련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인드스팀은 특정 뇌 영역에만 작용하므로 전신 부작용이 없다.

그대신 전기 자극을 매일 30분씩 하므로 이로 인한 부작용은 있을 수 있다. 피부 따가움이나 붉어짐, 피부가 매우 약한 사람이라면 피부 손상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배회측전전두엽의 자발적인 활성화를 높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각성이 있을 수 있다. 너무 밤늦게 마인드스팀을 사용하면 수면장애가 생길 수 있다. 밝은 낮에 사용하기를 권한다.”

– 마인드스팀이 상용화됐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현재 어디에서 구해서 사용할 수 있나.

“마인드스팀은 의료기기로 분류돼 있어 법적으로는 어디서나 판매하고 살수있다. 하지만 우울증 질환 자체가 의료진이 환자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마인드스팀은 신기술이므로 현재는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병의원 200여 곳에서만 상용화돼 있다. 여기서 잘 검증하고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확산을 시키고자 한다.

다만 기술의 특징의 자체는 향후 재택으로 자가 치료가 가능하다. 병원과 연계해 전자처방하고(전기 자극 시간과 횟수가 입력된다), 환자 이력을 관리하는 서비스 등도 탑재돼 있다.”

– 전자약은 우울증 외에도 어떤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가. 와이브레인에서는 어떤 파이프라인을 개발중이신지 궁금하다.

미국 칼라헬스가 개발한 전자약 시계. 파킨슨병 환자의 손떨림을 막아준다. 원래는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막도록 전기자극하는 의학기술이 있었는데, 이걸 뇌 대신 손의 감각신경을 제어하도록 만든 것이다./Calahealth

“전자약은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돼 있다.최근 10년간 기존 병원에서 쓰던 의료기기를 소형화해 어디서나 쓸 수 있도록 발전시키고 있다.

2011년에는 로보큐어가 뇌암 중 교모세포종을 치료하는 전자약을 출시했다. 세포분열을 억제해 고형 암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막는 원리다. 항암치료제만 먹으면 6개월 살 수 있는 환자가 이걸 같이 쓰면 12개월 생존한다고 밝혀졌다. 이 회사는 현재 다양한 고형암, 위치별 암을 치료하는 전자약 개발로 확대해 임상시험 중이다.

SK바이오팜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칼라헬스는 파킨슨병 환자의 손떨림을 막는 시계(전자약)를 출시했다. 원래는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막도록 전기자극하는 의학기술이 있었는데, 이걸 뇌 대신 손의 감각신경을 제어하도록 만든 것이다. KT가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뉴로시그마는 신경자극을 해서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를 치료하는 전자약을 시판했다.

먼저 우울증 세부 증상에 대해 치료 효과를 넓혀나가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랭곤병원 신경과에서 최근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임상시험이 끝나서 맞춤형 치료 관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마인트스팀과 마찬가지로 배회측전전두엽을 자극하는 원리로 코로나19 후유증 브레인포그와 우울증을 함께 치료하는 전자약을 개발했다. 최근 일산병원과 임상시험한 결과 스트레스와 우울증, 인지능력 저하 등을 해소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아 우울증 환자에게 마인드스팀을 단독으로 썼을 때, 약물 치료와 함께 했을 때, 장기 치료했을 때, 다양한 연령대가 썼을 때 등 여러 조건에서 어떤 효과가 있고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근거를 마련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

또한 산전·산후 우울증 관련해서도 연구 중이다. 우울증 환자가 임신을 준비하면서 항우울제를 중단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럴 때 마인드스팀을 사용하면 산전·산후 우울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지 확인하려고 한다.

우울증뿐 아니라 조기치매, PTSD, 조현병, 중독, 뇌졸중, 파킨슨병에 대한 tDCS 전자약도 개발 중이다. 경피신경전기자극을 이용한 편두통 전자약도 이르면 내년에 출시될 예정이다. 세브란스병원, 을지대병원과 함께 얼마 전 임상시험을 마쳤다. 편두통 환자 254명을 대상으로 재택 임상한 결과, 갑자기 편두통이 중증으로 시작됐을 때 우리가 개발한 전자약을 사용하면 62%가 2시간 이내 경증 또는 무증상으로 완화되고, 80% 이상이 48시간 이내 완화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같은 기술로 불면 증상을 개선하는 전자약도 개발해 분당서울대병원과 임상시험을 마쳤다.”

미국 뉴욕대 랭곤병원 신경과 전문의가 우울증 환자에게 우울증 전자약 '마인드스팀'을 적용하고 주의편향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와이브레인

– 앞으로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싶은가.

“우리 기술의 포인트는 병원에서뿐 아니라 재택에서도 얼마든지 환자가 스스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병원과 연계해 의료진이 환자를 관리하고 추적관찰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언젠가는 집에서도 쉽게 우울증과 불면증, 중독, 조현병 등을 환자가 관리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언젠가는 사람의 뇌와 로봇을 연결하는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도 개발해 상용화하고 싶다. 현재 현대차와 함께 ‘생각만으로도 운전할 수 있는’ 모빌리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뇌 기능은 정상이지만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싶다.

참고 자료

Neuromodulation(2023) DOI:https://doi.org/10.1016/j.neurom.2023.07.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