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산업이 '제2의 반도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은 의료기기산업이 오는 2029년 888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제조업에 속하는 의료기기산업의 성장은 고용 창출, 투자 확대와 같은 낙수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의료기기산업 종사자는 지난해 기준 국내 보건 산업 종사자 중 가장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우리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산업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 배경이다. 조선비즈는 국내 의료기기 산업 최전선에서 고군분투 중인 기업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의료용 메타버스 기술을 개발하는 델토이드 김요섭 대표는 요즘도 할머니를 떠올린다. 그가 2015년 KAIST를 졸업할 무렵 지병을 앓고 있었던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갔다. 김 대표의 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간 지 약 1년 뒤엔 잘 걷지를 못해 휠체어를 타야 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눕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어느 이른 아침 요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마주했다.
김 대표는 "이때 엄청난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했다.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데에 대한 아쉬움도 컸지만, 이 스토리가 할머니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양원에 들어가는 노인들의 전형적인 이야기였다.
집에 있을 때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거나 가족, 친구들과 교류하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점점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김 대표는 "의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지병을 오래 앓으신 노인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실 수 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요양원에서 어떤 상태인지 늘 모니터링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렇다고 해서 의사를 늘려서 환자의 상황을 매 순간 모니터링하고 가족들에게 알릴 수도 없지 않은가"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미 다 나와 있는 기술을 의료에 적용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본인이 의학적 지식을 잘 알고 있으면 이런 목표를 더 잘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연세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함께 사업할 사람들을 학교 내에서 찾았다. 그리고 본과 1학년을 마치자 마자 휴학하고 델토이드를 창업했다. 현재 의대생 신분인 김 대표는 델토이드에서 의료용 메타버스를 기획, 제작부터 디자인까지 총괄하고 있다.
이달 5일 서울 중구에 있는 델토이드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델토이드는 무슨 뜻인가? 그리고 의료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델토이드(deltoid)는 어깨세모근을 말한다. 열심히 운동하면 어깨근육이 커지는 것처럼 의료 메타버스를 활용해 더 많은 환자들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런 이름을 지었다.
델토이드는 의료용 메타버스를 만든다. 병원에서 홍보나 상담 등 원하는 목적으로 의뢰하면 기획부터 제작, 디자인, 00까지 한다. 개발자 두 명과 기획자 두 명, 디자이너 한 명이 협업하고 있다. '잽(ZEP)'이라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한다.
의료 밖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이 주로 메타버스를 사용한다. 우리가 SNS로 친구와, 또는 모르는 사람과 교류하는 것처럼 청소년들은 메타버스에서 자기와 닮은 아바타를 내세워 본인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이 활성화됐다.
이런 특징을 사용하면 메타버스 안에서 병원을 소개하거나 건물을 안내하고, 의료진과 상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020년에는 이언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와 함꼐 '메타버스 닥터 얼리언스'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메타버스에 가상 진료실을 만든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는 가상 공간에서 원격 진료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와 환자가 상담을 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증상이나 검사 결과 등을 보고 병을 진단해 처방까지 한다면, 메타버스 상담에서는 운동이나 생활습관 같은 건강상식을 알려주는 수준이다.
당시 성형 상담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환자의 얼굴을 보면서 성형수술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줬다. 이때 한 환자는 서울에서 대구까지 내려가 실제로 시술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
- 의료 메타버스는 사이버 공간에 있지 않나. 그러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겠다.
"맞다. 의료 메타버스가 상용화되면 외국인 환자들이 한국에 오기 전에 본인이 가고자 하는 병원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태국인이 한국 병원에 오고 싶은데 어디를 가야 할지 알아본다면 태국어로 홍보가 되어 있는 병원 중에서만 골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메타버스를 이용하면 실제와 닮은 가상 병원 건물로 들어와 실제로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진료실이나 입원실도 살펴볼 수 있다. 즉,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본인이 가고 싶은 병원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선택할 수 있는 셈이다."
- 아까 이대서울병원과 경희대병원 메타버스를 봤다. 실제 건물과 매우 닮아서 깜짝 놀랐다. 현재 병원 메타버스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현재는 의사끼리 메타버스에서 만나 컨퍼런스를 진행하는 용도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경희대병원에서는 환자들을 상담해주는 서비스를 상용화했고, 조선대병원에서는 해외 대학들과 공동 컨퍼런스를 주최할 때 활용하고 있다. 이화여대 의대는 메타버스 안에 미리 교육 콘텐츠를 넣어두고 의대생들을 교육할 때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병원이나 의대, 의료기관에서 필요한 내용을 의뢰하면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필요한 기능을 개발해 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병원 곳곳을 3D 캠으로 찍어서 화면을 돌려가며 보면 실제로 병원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메타버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출석 확인을 한 뒤 퀴즈를 풀면 교수에게 저절로 전송이 된다. 방탈출 게임처럼 시나리오를 짜 환자가 쓰러졌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시뮬레이션 하도록 만든 메타버스도 있다."
- 아직까지는 병원이나 의대 관계자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다. 조만간 환자들도 상담 외에 병원 메타버스를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올까.
"그렇다. 나중에는 환자들이 병원을 간접 방문해 실제 진료 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상용화할 것이다.
환자가 메타버스를 원활히 활용하려면 병원에 전화하거나 홈페이지 예약을 하거나 직접 찾아가는 것보다 돈과 시간을 아껴줘야 한다. 그러려면 더 많은 병원과 의사가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환자와 보호자가 병원 안팎을 돌아다니는 수준을 넘어 원무과에서 진료를 접수하고 수납 가능하도록 발전할 전망이다.
그래서 협력하는 병원을 점점 더 확장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의료 메타버스는 어떤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가.
"기업마다 각기 다른 용도의 의료 메타버스를 만든다. 어떤 업체에서는 가상 공간에서 실제 경험처럼 인체를 해부하거나, 수술 기술(술기)을 학습하도록 하는 메타버스를 만든다.
우리가 만드는 메타버스는 시뮬레이션이 강점이다. 앞서 언급한 용도 외에도 '대량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응급의학과 의사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의 문제를 풀어내는 메타버스로 활용할 수 있다.
앞으로는 홀로그램과 VR, XR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더 실제와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정보가 비슷한 메타버스가 등장하리라 본다.
또한 인공지능(AI)이 접목되면 메타버스 속 캐릭터들이 챗GPT 같은 생성형 AI로 등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무과 AI 아바타와 대화하며 진료과를 선택하고 그곳에 접수할 수 있을 것이다."
- 의료 메타버스가 널리 활용되려면 어떤 한계를 극복해야 하나.
"현재는 각 병원이나 의대에서 자체적으로 작게 메타버스를 제작해보고 있다. 그러면 나중에 다른 병원들과 연계를 하려고 해도 메타버스 안에서의 규칙 등이 통일이 되어 있지 않아서 불가능하다. A병원 메타버스 사용법과 B병원 메타버스 사용법이 전혀 다르면 불편한 것은 환자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기관마다 구축하는 메타버스에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델토이드에 참여하는 병원들은 모두 동일한 규칙 하에 만들어지므로 사용자들은 훨씬 쉽게 이 병원 저 병원에 갈 수 있다. 의료 메타버스가 지금보다 더 확장됐을 때 경쟁성이 더 있으리라고 본다.
또한 (인터넷의) '네트워크 속도'가 지금보다 더욱 빨라져야 한다고 본다. 메타버스 환경이 실제가 더욱 닮아지려면 결국 고화질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2차원으로 만들고 있지만 결국은 3차원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현재 5G만으로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기에 용량이 너무 크다. 디자인을 간소화시키고 단순화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서 지금의 메타버스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 의료 메타버스를 의사와 환자, 의사와 의사 등 사용자 간 소통에 중점을 두고 싶다면 스트리밍 서비스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고화질 환경은 포기해야 한다. 그 대신 수많은 사람이 들어와도, 매우 다른 환경으로 이동하더라도 메타버스가 멈춰서는 안된다.
반대로 실제와 흡사한 병원 환경을 메타버스 안에 재현하고 싶다면 스트리밍 서비스를 포기해야 한다. 미리 다운받아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형식이 될 것이다. 여러 사용자가 네트워킹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대신 실제와 닮은, 또는 실제보다 더욱 멋진 메타버스 환경을 만들 수 있다."
- 김 대표의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먼저 더 많은 국내 병원과 함께 협력하고 싶다. 더 많은 병원, 더 많은 의사가 참여할수록 그만큼 의료 메타버스 세계가 더욱 커지고 환자와 보호자들이 사용하기도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중환자나 요양원에 있는 환자들도 가족들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메타버스 환경을 만들고 싶다. 사생활 보호 등의 문제로 입원실에 직접 카메라를 달 수 없다면, '메타버스 만남의 장소'를 따로 만들어 원하는 사람에 한해 가상 공간에서 더욱 자주 볼 수 있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