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의료진과 故 나탈리 씨 가족들이 원내 로비 성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이날 윤승규 병원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옥진주 국제진료센터 교수(왼쪽에서 다섯 번째), 성필수 소화기내과 교수(왼쪽에서 여섯 번째), 故 나탈리 씨의 남편(왼쪽에서 네 번째)과 며느리(옥 교수 뒤) 등은 故 나탈리 씨를 추모하며 미사를 드렸다./서울성모병원

말기 간암으로 의식이 혼미 상태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나탈리 씨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스위스에서 진료 포기 권유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가족과 함께 삶의 마지막 여정을 보냈다.

"스위스 병원에서 말기 간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가 의식이 혼미해 대화가 어려운 상태이고,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알렸습니다."

지난 8월 8일 메일을 받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 옥진주 교수는 곧바로 메일 수신자와 통화를 했다. 수신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말기 간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 나탈리 씨의 아들이었다. 나탈리 씨는 스위스에서 진료 포기 권유를 받았으나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탈리 씨의 아들은 "어머니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고 생명을 인위적 행위로 죽음을 이르게 하는 '치료 포기'를 가족들이 단호히 거부했다"며 "간암 치료에 있어 한국이 앞서간다는 것을 듣고 하느님께 어머니를 부탁하는 마음으로 서울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며 간절히 부탁했다. 통화를 마친 옥 교수는 깊은 상념과 고민에 빠졌다.

옥 교수는 간암 혈관 및 인터벤션 치료의 권위자인 천호종 영상의학과 교수와 영상 자료를 검토했고 간암 전문가인 성필수 소화기내과 교수와도 의논했다. 나탈리 씨의 아들에게 받았던 최신 의무 기록과 혈액 검사 결과를 보고 재차 상의 했다.

나탈리 씨는 세균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과 간성뇌증으로 인해 의식이 떨어졌고 간 기능 악화로 심한 황달과 복수가 찬 상황이었다. 성 교수는 "다행히 아직은 너무 늦지 않았고 치료해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고 옥 교수는 반드시 나탈리 씨를 데려오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돌본다'는 가톨릭 생명 존중의 정신이 치료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옥 교수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아직은 '생명의 희망'이 있다고 현지에 긴급하게 연락을 취했고, 나탈리 씨는 한국행을 택했다.

문제는 환자 이송이었다. 게다가 이송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쇼크 상태가 와 나탈리 씨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고비도 있었다. 하지만 옥 교수가 스위스의 주치의에게 연락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 후 에어엠뷸런스의 전담 의사에게 이송을 잘 부탁했다.

드디어 8월 13일 나탈리씨가 에어엠뷸런스를 타고 출발해 다음 날 오전 서울성모병원에 무사히 도착했다. 나탈리 씨를 위해 끝까지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에 대해 기대를 갖고 함께 한국행을 택했던 가족들도 기뻐했다.

나탈리 씨가 이송되는 동안 병원은 예측 가능한 상황과 여건 등을 고려해 시나리오를 만들어 세심히 점검하고 철저히 대비했다. 만일에 생길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위기가 닥칠 것도 염두에 뒀다.

나탈리 씨가 응급실에 도착한 14일 오전 9시, 성 교수와 임지용 응급의학과 교수는 나탈리 씨가 황달이 심한 탓에 지체 없이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다행히 그날 오후 간 기능 회복을 위한 치료를 시행한 뒤 의식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틀 뒤 나탈리 씨는 의식을 되찾았고, 일주일 뒤에는 안경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

나탈리 씨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의료진은 희망을 갖고 간암 치료를 계획했다. 하지만 지난 4일 갑자기 폐렴이 오면서 나탈리 씨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진 나탈리 씨는 지난 10일 새벽, 삶의 마지막 여정을 마무리했다. 향년 78세였다.

성 교수는 "해외에서 곧 사망할 것이라고 해 치료를 포기한 환자를 본원에서 치료해 환자가 생존을 연장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간암 환자에서 간 기능 보존을 통해 환자들의 생존 기간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올리는 진료를 하겠다"고 말했다. 옥 교수는 "환자분의 아들과 처음 통화했을 때 치료를 끝까지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인상에 깊게 남아 꼭 서울성모병원에서 돕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며 "환자가 스위스에서는 의식 상태가 혼미했지만 여기서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 등 가족들과 대화를 할 정도로 좋아져 아름다운 이별을 맞으셨다"고 말했다.

나탈리 씨의 남편인 트리베르트 씨는 아내의 치료와 돌봄에 정성을 쏟은 서울성모병원의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와 보살핌에 감동을 받아 아내 나탈리 씨의 이름으로 연구 발전기금 5만 달러를 기부했다. 또한 앞으로 아프리카에서 치료받기 어려운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자선사업을 진료 분야까지 확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