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기간 단식으로 건강이 악화하면서 18일 오전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2023.9.18/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 시작 19일 만인 18일 새벽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처치를 받은 후 녹색병원으로 재이송됐다. 녹색병원은 1988년 ‘원진레이온 사태’를 계기로 세워진 400병상 규모의 직업병 전문병원으로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했다. 용마산과 인접한 이 병원은 여의도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이 대표가 성모병원에서 생리식염수 등 수액 치료를 받고 20㎞ 떨어진 녹색병원으로 전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표 건강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의료계 분석이다.

김원영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급성 영양실조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생리식염수를 먼저 투여해서 탈수를 치료하고, 혈당이 떨어지면 포도당 등 영양수액을 투여한 후 몸에 다른 이상이 없는 지 검사를 하게 된다”라며 “이 검사에서 응급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병원을 옮기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극단적으로 오랜 단식을 할 때는 전해질 불균형으로 심장마비가 오거나 몸속 케톤 수치가 올라가서 신경 병적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골수세포가 손상돼 감염에도 취약해진다. 이 대표가 수액 처방 등으로 안정을 찾았다는 것은 이 정도의 극단적인 상황은 피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단식으로 몸이 쇠락한 영양실조 환자를 (응급실에서) 1~2시간 안에 회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라며 “수술이 필요하지 않다면 (2차 병원으로 옮겨) 안정을 취하면서 점진적으로 투입하는 음식의 양을 늘려가는 식으로 치료하는 게 맞는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녹색병원으로 전원을 결정한 배경으로 이 병원에 단식 치료와 관련해 경험이 축적된 전문의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병원이 단식 환자들에 대한 경험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로 2011년 서울 대한문 앞에서 30일 동안 단식 농성을 한 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고문, 2013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로 대한문 앞에서 41일 단식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등이 단식 끝에 이 병원을 찾았다.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해 5일째 단식을 하던 강기갑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통합진보당 의정지원단에서 열린 비례대표 4인에 대한 제명의총을 마친 후 응급차에 실려가고 있다./조선DB

지난 2018년 불교 조계종 종단 개혁을 요구하며 조계사 우정공원에서 단식 농성을 한 설조스님이 41일 단식 끝에 이송된 병원도,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46일간 단식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진료를 받은 곳도 녹색병원이다.

국내에서 단식 환자를 가장 많이 진료한 의사로 꼽히는 이보라 국립중앙의료원 호흡기내과 전문의는 녹색병원에서 인권 치유센터장을 지냈다. 다만 2012년 비례대표 부정 경선 문제로 강기갑 통합진보당 대표는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받았다.

여권 인사들이 녹색병원을 찾은 일은 드물다. 지난 2019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이른바 노숙 단식을 했던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한 이학재 의원도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송돼 진료받았다.

녹색병원은 야권 인사들과 인연이 깊다. 녹색병원의 초대 병원장은 참여연대 초대 시민위원장을 지낸 양길승 원진재단 이사장이다.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은 지난 7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로 단식에 들어갔던 우원식 민주당 의원과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직접 찾아 방문 진료하기도 했다.

2019년 11월 27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8일째 단식하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녹색병원 발전위원회는 ‘박원순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대표인 송경용 성공회 신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공동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녹색병원은 국회 부의장 자문기구인 ‘빈곤아동 정책자문위원회’와 업무협약도 맺고 있다. 빈곤아동정책자문위는 민주당 측 3선 의원인 김영주 부의장이 구성한 기구다.

원진레이온 사태는 1970~80년대 섬유업체인 원진레이온 직원 수백여 명이 신경 독가스인 이황화탄소에 노출⋅중독돼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원진레이온은 1993년 폐업했고, 피해자 보상금 위로금 등을 출연해 세운 재단인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지난 2003년 녹색병원을 설립했다.

2003년 개원 기념식에서는 피해자 원혼을 달래는 ‘살림 굿’과 함께 가수 장사익, 이은미 초대 공연이 열렸다. 살림굿은 원진레이온 사망자 50여 명과 와이에이치 사건 때 숨진 김경화 씨 등에 대한 것이었다.

이 병원은 직업병 전문병원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지역병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 병원은 서울시 안전망병원으로 산재보험 혜택이 없는 특수고용직, 외국인 노동자들 치료를 하고, 병원 안에 인권 치유센터가 있어 난민·성소수자, 국가폭력피해자에게 의료비 지원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