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7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글로리아 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 교수는 자폐증 원인을 장내 세균이 유발한 면역단백질에서 찾아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김동환 기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32년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란 책에서 당시 주류 이론이던 천동설을 배격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갈릴레이의 ‘디알로고(Dialogo·대화)’처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처럼 다른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힘든 자폐증을 앓는 환자가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법적으로 등록된 국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환자는 2022년 기준 3만 7603명으로 2018년 2만 6703명과 비교해 70% 증가했다. 실제 환자는 등록 환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1998~2018년 20년 동안 ASD 발병률이 787%나 늘었다.

자폐는 아직 확실한 치료 방법이 없다. 발병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국뇌신경과학회에서 글로리아 최(Gloria Choi·46)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뇌인지과학부 교수는 “면역 체계가 뇌에 영향을 미쳐 자폐가 발생할 수 있음을 동물 실험으로 확인했다”며 “면역단백질을 통해 실험동물의 자폐 증상을 완화하는 데에도 성공했다”고 밝혔다. 과학계는 자폐아 출산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과학은 융합 연구가 대세이다. 뇌신경과학자인 최 교수는 면역학자인 허준렬(50) 하버드 의대 교수와 함께 신경면역학이란 새로운 접근을 통해 자폐의 새로운 원인을 찾아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부부이다. 캘리포니아 공대(칼텍)에서 함께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부부 과학자가 각자 전공을 살려 같은 문제를 융합 연구한 것이다.

글로리아 최 교수는 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3년 한국뇌신경과학회 정기국제학술대회’ 특별강연에서 “면역체계를 통해 자폐나 우울증 같은 뇌 기능 이상을 치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한국뇌신경과학회

◇장내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이 자폐 유발

–지난 2017년 네이처 논문에서 장내 세균이 자폐아 출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혔다.

“장내 세균이 유발한 면역단백질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생쥐가 자폐 증상이 있는 새끼를 낳도록 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자폐 원인이 엄마에게 있나.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폐의 원인 중 하나를 밝혔을 뿐이다. 유전자 분석 연구에서 아버지 나이가 많으면 자폐아 출산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최근 국내 연구진은 미세 플라스틱이 자폐의 원인일 가능성도 제시했다).”

–면역단백질이 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면역신호를 전달하는 인터루킨17이란 단백질이 뇌의 체성감각영역(S1DZ)에 영향을 미쳤다. 이곳은 몸의 위치나 자세를 관장하는 곳이다.”

–그러면 생쥐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나.

“생쥐는 늘 동료와 어울린다. 그런데 인터루킨17이 뇌에 작용하면 동료보다 장난감과 시간을 더 보냈다. 사람으로 치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자폐 증상을 보인 것이다.”

–당시 논문에서 자폐 치료 방법도 제시했다.

“문제가 된 면역단백질이 장내 세균이 유발한 면역세포에서 나왔다. 항생제로 해당 장내 세균을 없애자 임신 중에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정상 새끼를 낳았다. 또 면역단백질이 공략하는 뇌 영역의 신호를 조절하자 생쥐의 자폐 행동이 크게 줄었다.”

◇부부의 융합 연구 덕분에 새로운 접근 가능

–이번 뇌신경과학회에서 신경면역학 연구가 큰 주목을 받았다. 어떻게 연구를 시작했나.

“남편과 칼텍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을 때 지도 교수인 폴 페터슨(Paul Patterson) 교수가 어미 쥐가 아프면 나중에 태어난 쥐가 자폐 증상을 보인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생쥐에서 나타난 현상이 사람에게도 적용되나.

“덴마크에서 1980~2005년 출산 아동을 조사했더니 산모가 임신 3개월 안에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폐아 출산 위험이 3배로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뇌 문제인 자폐가 감염이란 면역계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왜 그전에는 자폐를 신경면역학으로 연구하지 못했나.

“뇌에는 이물질의 침입을 막는 혈뇌장벽(血腦障壁·Blood Brain Barrier)이 있다. 산소나 영양분은 혈관에서 뇌로 가지만, 그보다 큰 단백질 등은 혈관을 둘러싼 내피세포라는 장벽에 막혀 뇌로 가지 못한다. 뇌는 면역단백질이 접근할 수 없는 ‘면역 회피 장기’라고 봤다. 하지만 세균 감염이 일어나면 면역단백질도 뇌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장내 세균을 바꾸면 자폐아 출산 위험을 줄일 수 있겠다.

“남편과 함께 자폐아를 출산한 여성과 다른 여성의 장내 세균이 어떻게 다른지 추적하고 있다. 시료를 받아 분석하느라 시간이 걸린다. 유익한 장내 세균이 무엇인지 알면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몸에 좋은 세균)로 자폐아 출산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리아 최 교수는 "자폐아 출산을 부른 면역단백질이 나중에는 자폐증 증상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단백질이라도 시기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는 것이다./김동환 기자

◇병 주고 약도 주는 두 얼굴의 면역단백질

–이번 학회에서 자폐아 출산의 원인으로 지목한 인터루킨17 단백질이 자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상반된 결과를 발표했다.

“그렇다. 네이처 논문을 발표한 뒤에 자폐아 부모와 의사들이 이메일을 많이 보내왔다. 자폐 아동이 아파서 열이 나면 갑자기 부모와 눈을 맞추고 말을 하는 등 자폐 증상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자폐 아동 17%가 그런 현상을 보인다고 알려졌다. 생쥐에게 세균 감염으로 열이 나는 상황을 구현했더니 인터루킨 17이 자폐증 증상을 완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임신 중에는 병을 주더니 나중에는 약이 된다는 말인가.

“같은 단백질 분자가 시기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앞서 연구에서 선충에서 인터루킨17이 사회적 행동이라고 볼 군집을 유발한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선충은 신경계는 있지만, 면역계가 없다. 자폐 증상과 직결된 면역단백질이 원래는 뇌에서 활동하다가 나중에 면역계로 영역을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면역단백질이 뇌에 작용하는 것을 보여주는 다른 증거도 있나.

“감기에 걸리면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진다. 그동안 단순히 피로로 인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면역계가 뇌와 대화하는 적극적인 과정이라고 보기 시작했다. 아프면 면역계가 사회적 행동을 줄이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미각이나 후각을 잃는 것도 같은 현상인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면역계가 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쉬워졌다. 나는 코로나에 걸리고 우울증까지 앓았다. 모두 감염이 뇌에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쥐가 짝짓기에서 아픈 상대를 알아채고 멀리하는 원리도 밝혔다.

“2021년 네이처에 세균 감염에서 나오는 물질을 처리한 암컷 쥐와 같이 있으면 수컷 쥐의 뇌 편도에서 짝짓기를 억제하는 호르몬 수용체가 작동하는 현상을 발표했다. 수컷 쥐가 건강하지 못한 자손을 낳는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다. 역시 면역계가 사회적 행동을 변화시킨 예이다.”

글로리아 최 교수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터전을 옮겼다. 내성적 성격 탓에 적응이 힘들었지만 답이 확실한 수학과 과학에 집중해 이겨냈다고 했다./김동환 기자

◇내성적 소녀에서 세계적 과학자로 성장

–최 교수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갔다고 들었다. 아예 어린 나이도 아니고 나중에 유학을 간 것도 아니어서 적응하기 힘들었겠다.

“그런 말을 해줘서 고맙다. 이민 갔을 때가 딱 사춘기였던 것 같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언어도 통하지 않아 힘들었다. 과학은 실험실에서 혼자 하면 되니 사회성이 떨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오산이었다. 실험실은 혼자 운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발표해야 한다. 지금은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실험실 연구원은 몇 명인가.

“박사후연구원이 8~9명이고 학생 2명, 지원 인력이 3명 있다. 허 교수 연구실은 그보다 2배나 많다.”

–아예 남편과 연구실을 합치면 좋지 않나.

“남편은 늘 나와 점심을 같이 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아니다(웃음). 남편은 부부가 같이 연구해도 자신은 면역학자로, 나는 뇌신경과학자로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사고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한국 학자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 국내 뇌신경과학 수준은 어떤가.

“미국에서 온 과학자들과 얘기했는데 한국 뇌과학자들이 정말 잘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하는 연구를 한국에서 다 하고, 더 잘하기도 한다. 제 실험실에도 한국에서 온 박사들이 있는데 모두 뛰어나다.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한국 과학이 더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에선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는 학생이 많다고 들었다. 훌륭한 인재가 의사가 되는 것도 좋지만 그만큼 기초과학 하는 사람도 많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초과학을 해도 멋지고 돈도 잘 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미국에선 교수를 하다가 창업해서 기업가로 성공한 예도 많다.

“미국에선 교수가 창업하다가 기업으로 가고, 나중에 다시 대학으로 오는 일이 흔하다. 예전에는 과학을 하면 무조건 교수가 되려고 했지만, 지금은 과학 자체가 중요하지 학교나 기업 어디서 하는지는 상관없다는 분위기이다.”

–뇌과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바로 치료제로 이어지기 힘들다. 연구비 받기 어렵지 않나.

“정부 연구비도 있지만, 민간 재단 지원도 큰 힘이 된다. 사이먼스재단이 대표적이다. 수학자 출신 중 최고 갑부로 알려진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85) 박사가 세운 재단이다. 사이먼스 박사에게도 자폐 자녀가 있다. 1년에 두 번 재단 학술행사에 참여하는 것 외에 아무 조건 없이 지원한다. 한국 연구자들이 연구비 걱정을 많이 하던데 미국처럼 민간 지원이 많았으면 한다.”

매사추세츠 공대(MIT) 연구실의 글로리아 최 교수. 2013년 MIT 뇌인지과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2014년에는 생명과학 최고 권위지인 ‘셀(Cell)’이 40주년을 맞아 선정한 ‘40세 이하 주요 생물학자 40인’에 포함됐다./MIT

참고 자료

Nature(2021),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1-03413-6

Nature(2017), DOI: https://doi.org/10.1038/nature23910

Nature(2017), DOI: https://doi.org/10.1038/nature23909

Cell(2014), DOI: https://doi.org/10.1016/j.cell.2014.12.012

☞글로리아 최 교수

중학교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갔다. 한국명은 최보윤이다. 부모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딸을 세계적 과학자로 키웠다. 최 교수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생물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고, 캘리포니아 공대(칼텍) 대학원에 진학해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으며, 2013년 매사추세츠 공대(MIT) 뇌인지과학부 교수로 부임했다. 2014년 생명과학 최고 권위지인 ‘셀(Cell)’이 40주년을 맞아 선정한 ‘40세 이하 주요 생물학자 40인’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