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취급해 적극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료계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소아 청소년 사이에서 고도 비만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만큼, 비만을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정부가 인식하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설탕으로 범벅이 된 디저트를 즐기고, 이를 공유하는 문화가 소아청소년 비만으로 이어진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경곤 대한비만학회 부회장(가천의대 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은 7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대한비만학회 보험·정책 심포지엄에서 “국내에서 고도 비만과 소아청소년 비만 유병률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한비만학회 진료지침에 따르면 BMI(체질량지수) 지수가 25가 넘으면 비만으로 보고, 운동 처방 및 약물 치료를 고려하라고 권고한다. BMI가 30 이상이면 2단계 비만(고도 비만) 35 이상이면 3단계 비만(초고도 비만)으로 분류한다.
김 부회장은 “10년 전만 해도 BMI가 30을 넘는 사람이 3%가 안 됐는데, 현재는 BMI 30이 넘는 사람이 20~30대 남성의 10%에 육박한다”며 “비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10~20년 안에 (비만 인구가 많은) 미국 상황을 따라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용희 대한비만학회 소아청소년위원회 이사(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는 소아청소년 비만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홍 교수는 소아비만의 외부적 요인으로 “후식으로 탕후루를 즐기는 10대 아이들의 놀이 문화”를 꼽았다.
어린 나이에 비만을 유발하는 습관을 들이면, 자라서 당뇨병 등 만성질환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빨리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런 놀이 문화 속에서는 교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또 “과체중인 남자아이가 학폭 피해자인 경우가 많고, 비만 아동은 각종 정신과 약물을 더 많이 복용한다”고 우려했다.
박철영 대한비만학회 이사장(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은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비만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데, 사람들이 잘 인식을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만’에 무감각해진 상태라는 뜻이다.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삭센다와 위고비 등 획기적인 비만 치료제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지만, 심각한 합병증이 우려되는 고도 비만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비싼 가격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삭센다, 위고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위장 절제 수술(비만대사수술)을 제외하면 모든 비만 치료에서 급여가 인정되지 않는다. 2012~201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허가를 받은 벨빅, 큐시미아, 콘트라브 등 비만치료제는 삭센다, 위고비와 비교하면 약값이 훨씬 저렴하고, 비만 대사 수술에 비하면 안전하고 접근성이 높은데도 건보 적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비만으로 인한 당뇨병 고혈압 등 합병증 치료제들은 급여가 된다”며, 합병증이 우려되는 2단계, 3단계 비만 환자는 반드시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희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 과장은 “비만 치료제가 한번에 건보 급여를 받는 것은 쉽지 않다”며 “단계적으로 우선순위가 있는 것부터 검토하는 작업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